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양평의 또 다른 매력과 장점

by 유진

"커서 뭐가 되고 싶나요?"


'국민학교'를 다닐 때 생활기록부 같은 서류 작성을 위해 매년 들었던 질문이다. 그때도 좀 독특한 면이 있었는지 이 질문이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니, 꼭 뭐가 돼야 하는 건가? 나는 그냥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래도 겉모습은 사람인지라 '사람'이라고 적어낼 수는 없었고, 매일 보던 게 학교 선생님이라 '선생님'이라고 적어내었다. 그 말대로 지금 선생님을 하고 있으니 나는 참 초지일관인 사람인가 보다. 어쨌든 진짜로 되고 싶었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도 이루어가고 있다. 지금, 여기, 양평에서 말이다.


1. "이거 2만 원 가져가세요."


양수리에는 '두머리부엌'이라는 작은 식당이 있다. 조합원들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양평에서 생산되는, 그러나 가게에 납품되기에는 못 생긴 유기농, 무농약 식재료를 주로 사용하는 곳이다. 작년 4월 온라인 교육을 하게 되어 집밥 세 끼를 먹게 된 우리집 아들들, 일명 삼식이들을 위해 부랴부랴 스파게티를 만들고 있었다. "쾅" 하며 스파게티 소스병이 발 위로 떨어졌다. 발가락 몇 개가 골절되었다.

며칠 뒤 병원 진료일이 되어 재택근무 중 짬을 내 양수리로 향했다. 편하게 밥을 좀 먹고 병원에 가려고 두머리부엌으로 들어가 소박한 밥상을 만끽했다. 그런데 내 멘탈에도 금이 갔던 것일까, 생전 안 하던 실수를 했다. 핸드폰(지갑 겸용)을 두고 온 것이다. "핸드폰을 놓고 왔어요. 병원에 가려고 나온 건데 어쩌지..." 우왕좌왕하며 횡설수설하는 내게 두머리부엌 직원이 말했다. "밥값은 나중에 주세요. 그리고 이거 2만 원 가지고 가세요. 병원 가야 한다면서요." 나는 그 돈으로 병원 진료를 받아 헛걸음을 면할 수 있었다.


2. "집은 멀쩡한가요?"


가만히 놔둔 자전거에 녹이 슬듯 집도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일 년 넘게 비어있던 집에 들어왔으니 자잘한 고장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5월 중순쯤, 뒷마당 관정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넘어진 아기가 엄마를 부르듯 동네 언니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각선에 살고 있는 언니ㅡ온 동네를 들썩이게 하는 상쾌한 웃음의 소유자-가 남편분과 함께 출동하셨다. '사람 부르면 돈 든다. 우리가 하자!'라며 관정 대탐험을 시작하셨다. 우리 동네 총무 언니는 자신의 집 관정 사건과 동일한 사례라며 사건 발생의 원인과 해결방법에 대해 오밀조밀한 조언을 건네주었다. 사건은 전문가를 부르는 것으로 낙찰, 총무언니가 소개해준 분을 모셨고 관정은 잘 수리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였다.

"집은 멀쩡한가요?" 하며 일명 '관정 사장님'이 가끔 우리집에 들렀다. 오셔서 전기도 봐주고, 관정도 괜찮은지 봐주고, 전등도 갈아주셨다. 그러고는 식사비, 기름값 하시라고 입금을 해드리면 도리어 화를 내셨다.

"나는 우리 동네 집들도 그냥 봐줘. 그러니까 돈 넣지 마요."라고 하시며.


한정식 집 '장독대'


3. "이거 가져가서 먹어요."


내 피와 살의 몇 프로는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일 게다. 국수역 근처의 한정식 집 '장독대' 말이다. 양평 살던 첫 해 알게 된 이 식당의 정갈하고 단정한 맛에 반해 집밥이 힘든 날, 바빠서 여력이 없는 날, 정신이 허기져 친정 엄마 밥이 고픈 날, 이곳을 찾았다. 양평 살다 2년 동안 서울에 돌아가 살 때도 마음이 아프면 양평에 와 바람을 쐬며, 사장님의 사랑으로 빈 곳을 채워 가곤 했다.

9년의 세월 동안 나는 넘치는 텃밭 생산물을 가져다 드렸다. 이 집에서는 마구 올라오는 망초대와 텃밭의 상추, 로메인 등을 챙겨갔다. 서울로 이사 가게 되었을 때에는 효소 담금용 유리병과 의자, 화장지 등도 나눔했다. 남아서, 안 써서 드린 것뿐인데, 사장님도 가만있지 않으셨다. "이거 남해에서 직접 채취한 거야." 하시며 해산물을 주시고, 큰애가 좋아하는 '마늘종'도 챙겨주신다. 큰애와 둘이 가서 밥을 먹으면 작은애 주라며 부침개를 포장해주신다. 사장님이 하시는 말 "이거 가져가서 먹어요"는 정말 따뜻한 말이다.


4. "나중에 돈통에 넣어~"

나의 여름철 최애 간식인 옥수수를 제공해주시는 '옥수수 할머니'. 할머니는 옥수수를 수확하는 여름철이면 직접 나와 옥수수를 팔지만, 그 외에는 가판대에 채소와 가격표, 돈통만 놓고 사라지신다. 손님은 채소를 골라 돈통에 알아서 돈을 넣고 가면 되는데, 이 돈통이 참 놀랍다. 가로 세로 20센티 정도 되는 네모난 종이 상자인데, 뚜껑이 없다! 안에 든 지폐와 동전이 훤히 내다보이니 그야말로 '믿음'을 사고파는 가게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채소 하나를 골라 잡았다. 현금을 안 들고 다니니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돈을 안 가져왔어요. 입금해 드릴게요." 했더니 할머니께서 "뭐, 귀찮게 입금하고 그래. 나중에 지날 때 돈통에 넣어~" 하신다. 엄청난 단골도 되기 전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저렇게 무한 신뢰하지?, 지연이 사람을 저렇게 순수하게 만드는 걸까 깊게 생각해본 날이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양평에서의 나는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감동하며, 온기에 젖어든다. 그렇게 부족한 사람인 나는 양평의 '사람들'을 만나 조금은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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