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을에
너는 떠나보낸 별을 그리워하며, 보내주며 이 호수 곁을 걸었고
나는 가질 수 없는 달이 물빛에 부서지는 월파정에 슬픈 사연을 묻었다.
우리는 차마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서로 보폭을 맞추고 거리를 맞추며
그저 걸었다.
계절은 다시 돌고 돌아
그때의 지는 낙엽이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푸르른 새 잎으로, 날리는 꽃향기로, 눈을 홀리는 가득한 꽃밭으로
마음을 어지럽힌다.
저만치 뛰어 흔들의자에 냉큼 앉아 발을 굴릴 때, 얼굴을 스치던 그날 오후의 바람이
오늘도 코끝에 스치는 것만 같이,
단 한 번의 기억일 뿐인데,
이렇게 구석구석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신기할 일이다.
기억이란 온 몸의 감각에 오롯이 새겨지는 것.
기억의 힘이란, 추억의 힘이란 실로 대단하구나
아무것도 아니었던 인적조차, 발걸음조차 한적했던 구석진 공간이
어느 순간, 어느 인생, 누군가에겐 이야기가 되고, 특별함이 된다.
너와 나의 숨겨진 비밀정원처럼
송이송이가 모여 이룬 꽃들을 좋아한다.
하나하나 보면 볼 품 없고 작고 여리지만 모였을 때 찬란해지는 꽃송이.
기쁨, 슬픔, 기대, 실망, 사랑, 상실, 욕심, 체념... 이 모든 감정들이 모여 만드는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지 아니한가.
삶이란, 인생이란 한 가지 색, 한 가지 모양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수십 가지, 수백 가지의 모양과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꽃송이.
너를 향한 나의 마음도
결론지어, 사랑이란 단 하나의 마음으로 정의하고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은 수십 가지, 수백 가지의 감정으로 겹겹이 모인 꽃송이겠지
그래서 사랑이라면서도
때때로 다른 표정으로, 다른 말투로, 헷갈리고, 속상하지만
결국 모두가 한줄기로 이어진 꽃송이, 애틋한 그 마음
인파를 가르며 흙길을 한참 걷다 선물같은 고운 길을 만났다.
우리 가는 길,
내내 꽃길일 수 없겠지만
가끔은 빼꼼---
행복하게, 기운 나게,
특별한 날처럼, 선물 같은 날처럼,
예상치 못한 꽃길을 발견하는 행복도 마주하길.
어떤 장소는
새로운 기억과 추억이 더해지며
이전의 의미와 전혀 다른 새로운 곳이 되기도 한다.
2025.05
일산 호수공원에서
이혼 후 아이와 첫 어린이날을 보냈던 아름답고도 아픈 기억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기억이 기억을 덮어
새롭게 꿈꾸게한 곳이기도 합니다.
장소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지만, 아팠던 기억 위에 새롭게 아름다운 기억은
상처 위에 더 단단히 자리잡는 새살처럼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하리라 생각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