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날 야구 경기관람은 아기새를 응원하기 위한 나의 선물이었다.
중간고사를 끝내고, 야구를 직관하고 싶다는 사춘기 아기새와 추억을 만들고 싶어
특별히 좋은 자리도 지인찬스 써서 선점하고,
특별히 유니폼에 응원봉도 부랴부랴 준비하고,
특별히 유명하다는 주전부리도 땀나게 달려가며 줄 서서 득템 하고,
너를 잘 아는 내가,
너를 응원하는 나만의 방식
#2
누군가를 이렇게 응원해 본 적이 얼마만인가
수만 명의 서로 모르는 이들이
그저 한 마음이 되어 한 편이 되어
그라운드를 향해 파이팅을 외친다.
잘할 때도 흥이 나지만,
응원이란 못할 때, 못할수록, 더욱 안타깝고 절실해지는 마음
그저 네 편이 되어줄게.
때론 맹목적이고 조건없지만, 그래서 고맙고 든든한 마음의 울림.
이 날, 우리의 선수들은 졌다.
하지만 왠지 이곳이 홈그라운드가 아닌,
그들을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어졌다.
'이기는 편이 내 편'이 아닌,
패배 뒤에 돌아선 처진 어깨와 실망감의 무게가 어떤 것일지,
가장 약하고, 져서 기운 없을 때 전해지는 응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이젠, 그걸 아는 나이가 되고야 말았다.
#3
아이를 위한 이벤트라고 했더니 몇 번의 수고스러움도 마다하지 않고 가장 좋은 자리를 알아봐 준 마음도
미리 응원가를 연습해 가라, 응원복도 준비해 가라 우스갯소리 같지만 알아두면 좋을 걸 알려준 재치도
아침부터 내리는 비에 경기장이 추울 테니 담요와 핫팩과 겉옷을 챙겨가라 염려해 준 세심함도
마음의 가장 약한 부위를 툭툭 건들며 그것은 감동이라고 답한다.
나는 아기새에겐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새지만,
나도 또 어느 때엔 누군가로부터, 주위의 응원을 넙죽 받아먹고 살고 있구나.
#4
얼마 전엔 입사동기들 모임이 있었다. 내 첫 직장의 입사동기니 벌써 이십 년이 넘은 사이.
지금은 아직 그곳에 있는 이도 있고, 각자의 영역에서 다른 포지션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몇 년 전부터는 연말에 송년회와 이맘때쯤 골프모임을 한 번씩 하고 있다. 입사 동기들이 보통 4~5살 위인 경우가 많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동기 중 내가 막내라고 살뜰히 챙겨준다. 인간관계를 최대한 간소하게 하는 편이지만 이 모임만큼은 오래오래 간직하고픈 든든한 내편들.
올해도 역시나 형편없이 명랑하기만 한 내 골프실력에도 누구 하나 핀잔주는 이가 없고,
마지막엔 분명 보기 퍼팅 타이밍인데, "땡그랑"소리와 함께 "나이스 버디~!!"를 외치며 동영상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주었다.
"아니.. 보기인데 무슨 버디라고 동영상을 찍어요, 사기네 사기 ㅋㅋ" 라며 민망해하는 내게
"아휴 누가 알아, 그냥 버디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보면서 간직해. 누구 보여줄 땐 그냥 시치미 떼고 버디 했다 그래. 그러다 보면 나중에 진짜 버디하고 그러는 거지 머. 아무도 모른다. 다 버디 영상인 줄 알지~!! 인생 다 그런 거야."
깔깔 웃고 넘어갔는데 다음날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시 보니, 이게 그렇게 큰 응원이 되네.
그 몇 초짜리 영상을 보고 또 보며 그날 파이팅을 외쳐준 동기들을 떠올렸다.
사실 응원에 과정과 결과와 방법과 적당한 수위 - 그런 게 뭐가 그리 대수겠는가.
내가 너를 응원하고 있고, 너는 잘될 거야. 그 진심이 전해지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그것이 응원 아닌가.
내가 이 모임 와 이 멤버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맥락이 닿아있어서인 것 같다.
예전에도 지금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던 지간에 재단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고,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것
그 마음이 어떤 것보다 든든하고 좋아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되어 끝내 이어가는 인연으로 이어지는 거겠지.
모든 경우에 진심이나 응원이 그 마음 그대로 오해 없이, 마음의 크기와 무게와 모양 그대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가 다르게 전해진다.
받아들이는 상대에 따라 더 크게 전달되기도, 더 작게 전달되기도,
또 어떤 경우엔 아예 닿지 않은 경우도 있다.
상대방에게 부담스러운 표현은 아무리 벅찬 마음과 눌러 담은 마음이라도 왜 그걸 몰라주냐 탓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응원은 애당초 돌려받을 생각으로 준 마음이 아니었으므로.
처음부터 일방향의 마음이므로.
그러니 비록 야속하게 내 마음을 몰라준다 서운해할 것도 없고, 돌려주지 않는다 원망할 것도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마음도 있지만,
내게 주는 수많은 마음과 응원과 염려와 걱정과 사랑을 기억해서, 받은 것마저 쏟고 잃어버리는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켜켜이 고마운 마음 간직해서 -
다시 일어나고, 버티고, 살아낼 뿐인 것이다.
사실 기억해야 할 건
내가 누구에게 어떤 마음과 응원을 얼마만큼 주었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어떤 마음과 응원을 고맙게도 받았느냐 이다.
기억하고, 간직하고, 애틋해야 한다.
나를 나보다 아끼며 주었던 마음을.
나를 지지해주려 돌려받을 것 생각지 않고 자신의 마음조각을 아낌없이 던져 준 그 손길을.
그리고 때론 나 스스로에게 너그럽고 후하게
응원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될 수 있길 소망해보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