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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소안 Sep 28. 2022

중대장은 모르고 정훈장교는 아는 것들

네 번째 편지

봉별기님


지난 편지를 읽고 떠오른 얘기가 있어요. 군에서 상관들 혹은 동료들이 여군을 칭찬할 때, 이렇게 말하는거 들어보셨죠? “남군 같다”, “남군보다 낫다” 좋은 의도로 말한 걸텐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더라구요. 꼭 비교해야 칭찬이 되는걸까요. 여군은 남군의 대체재가 아니고, 깍두기도 아닌데요. 우리도 우리의 일을 하려 스스로 군대에 갔고, 그 일은 남군을 보조하거나 반대로 돋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군인이면 해야 하는 임무였잖아요. 


봉별기님께서는 스스로 문제의식이 약한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적응력이 강한 분이라고 느껴요. 사회와 군에서 정해놓은 규정을 따라 착실하게 과업을 해오셨죠. 저 역시 큰 틀은 모범생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충동이 강하고, 독립적인 성향이라서 가족과 친구들을 종종 놀래키곤 해요. 


예를 들면 대학생 시절 버스를 타고 등교하다가 학교 앞에서 내리지 않고 종점까지 종종 가기도 했구요. 학사경고를 목표로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다닌 학기도 있고, 다른 어느 학기는 실연한 아픔에 집에서 이불만 둘둘 두르고 있었어요. (친구들은 차라리 휴학을 하라고 했었죠.) 부모님이 통제를 안하시고, 하고 싶은건 뭐든 다 하는 제게 친구들은 ‘보헤미안’이라는 별명도 붙여주었어요.


친구들은 아직도 궁금해해요. 그런 자유로운 영혼이 가장 폐쇄적인 조직에서 어떻게 생활했냐고요. 간단히 말하면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고, 지킬 것만 지키면 오히려 자유롭다고 했죠. 하지만 아직도 군생활을 그리워하고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는 건 제 군사특기(병과)의 영향이 커요. 


군복무 6년 4개월동안 제 병과는 ‘공보정훈’이었습니다. 글쓰고, 말하고, 교육하는 장교인데요. 육군에서 병과를 구분할 때는 전투병과, 행정병과, 기술병과로 구분해요. 함께 임관하는 동기 중에서 과반수의 동기들이 전투병과(보병, 포병, 정보통신...)를 부여받아요. 이들은 소대장, 인사장교, 군수장교 등등을 거쳐 지원과장, 작전장교, 중대장 등을 맡기도 하는데요. 그 유명한 “중대장은 오늘 너희에게 실망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반면 저는 행정병과 장교로, 어느 부대에 가든 진급을 하든 ‘정훈장교’라는 직책과 임무가 같습니다. 제가 느낀 전투병과와의 차이는 병력 통솔 유무에요. 전투병과 동기들은 소대원, 중대원들과 동고동락하며 군생활 동안 부모처럼 보살피는 역할을 해요. 평상시에는 그들과 땡볕 아래서 땀 흘리며 교육훈련도, 진지공사도 하고 훈련 때는 함께 먹고 자고. 끈끈해지지 않을 수가 없죠. 한때는 전투병과였으면 어땠을까? 여군 소대장, 여군 중대장 참 멋있지 않았을까? 란 생각도 많이 했어요. 


소대장, 중대장 동기들이 훈련하는 동안 저 역시 함께 뛰어다니며 홍보 사진을 찍고, 훈련 기사를 쓰면서 작전에 참여합니다. 또 ‘공보작전’이라고 해서 군대를 향한 국민의 긍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전투와 훈련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일을 해요. 이러한 업무는 남군, 여군의 능력 차이가 나지 않죠. 그래서 우리 병과는 전투병과에 비해 성비가 높지 않았습니다. 


독립적이고 평등하게 업무할 수 있는 환경도 마음에 들었는데 또 다른 좋았던 점도 있어요. 저는 행정병과 장교였기 때문에 내 소대원, 중대원은 없었지만 반대로 그래서 모든 부대원이 내 자식, 내 동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거에요. 부모는 못되어도 이모나 큰누나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한 발짝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 많이 보고 듣는 것도 있었죠. 예를 들면 병사들의 연애 얘기나 진로 고민... 갑자기 이런 카피를 뽑고 싶어지네요. <중대장은 모르고 정훈장교는 아는 것들> 처럼요. 하하.


아무튼 저는 병사들과 함께 부대끼고 땀 흘리는 전투병과 장교였어도 좋았겠지만, 군 생활의 가치를 교육하고 그들의 헌신을 사진과 글로 남기는 정훈장교라 뿌듯했습니다. ‘한 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이런 느낌으로다가 말이죠. 


그나저나 봉별기님의 결혼계획을 편지에서 듣다니 깜짝 놀랐어요. 먼저 군인가족(육군에서는 군인의 아내나 남편을 ‘가족’이라고 부른답니다.)이 되실 남자친구분 마음가짐도 대단하시고요. 명령에 따라 부대를 이동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우리인데, 결혼이라는 큰 이벤트가 있어 고민되시겠어요. 참, 결혼식 사회자는 정하셨나요? 군대행사 전문, 정훈장교 출신 제대군인 한 명 여기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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