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
재혼으로 인해 엄마에게는 새 가족이 생겼다. 남편과 남편이 데려온 두 명의 자녀.
물론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성인이고 각자 독립하여 살고 있다.
한동안 엄마를 찾아가면 나는 엄마의 남편과 새로 생긴 두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아저씨(나는 엄마의 남편을 그렇게 부른다. 엄마와 둘이 있을 때만. 다 함께 있을 때는 굳이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된다.)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아저씨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전 부인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 과정에서 아저씨가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아이들은 또 어떤 상처를 받으며 자랐는지, 얼마나 안쓰러운지. 그럼에도 얼마나 잘 자랐고 얼마나 대견한지.
요즘 유행하는 말로 TMI다. 나는 묻지도 않았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들을 주입당하며 적절한 호응을 해야 했다.
열심히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엄마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나랑 할 얘기가 남 얘기밖에 없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슬퍼졌다.
뭐 엄마에게는 그들이 남이 아니긴 하다.
엄마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엄마는 참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다.
엄마의 새로운 가족들이 이제껏 받아왔을 상처를 헤아리고, 그 상처에 기인한 현재의 약점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데 엄마의 그런 따뜻함이 왜 나에게는 와 닿지 않는 걸까. 엄마는 내 상처들도 그렇게 헤아려 본 적이 있을까. 좀처럼 표현하지 못하는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려 한 적이 있을까.
엄마의 집에 찾아갈 때마다 새 가족들의 물건들이 조금씩 늘어나 있었다.
벽에는 아저씨의 부모님과 군복 입은 아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렸다.
그 아들이 제대 후에 놓고 갔다는 여러 짐들이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곳에 내 물건은 없다. 엄마와 내가 함께 생활했던 곳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엄마의 집이니까.
그런 엄마의 집이, 엄마와 새 가족들의 집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비좁던 내 설 자리가 더 비좁아진 것 같았다.
나는 엄마의 새 자녀들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엄마 집을 방문할 때 굳이 시간 내서 만나러 올 그런 관계는 아니니까.
나는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엄마의 새로운 아들과 딸이 되어, 엄마와 관계를 맺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나만의 엄마가 아니다.
외국에 있는 나보다 엄마는 새 자녀들과 더 자주 만났고 교류했다. 함께 통영으로 가족 여행도 다녀왔단다.
엄마의 새 딸은 나보다 더 살가워 보였다. 나는 안 챙기는 엄마의 생일도 챙기고 크리스마스에는 아기자기한 선물도 보낸 모양이다. 대기업에 취직한 아들은 직원 할인으로 엄마에게 새 냉장고도 선물했다.
그들 나름대로 새어머니와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옆에서 살뜰히 챙겨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참 이기적인 딸이다. 엄마 옆을 지켜주는 아저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진 않지만, 따로 표현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엄마와 아저씨 둘의 관계 아닌가. 생각해보면 딱히 내가 감사해야 할 이유도 없다.
아무튼 엄마는 그렇게 새 가족과 행복하게 잘 지내시는 것 같다. 나를 제외한 네 명은 완벽한 한 가족처럼 보였다.
거기에 내가 낄 자리는 없었다. 그야말로 개밥의 도토리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엄마를 만나고 나서 그제서야 겨우 제대로 땅에 발을 딛고 서게 된 것 같았는데, 이제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다 못해 한없이 가벼운 존재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고 자녀들이 장성한 후에 이루어지는 남녀의 결합은 사실혼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굳이 혼인신고를 해서 얻는 메리트도 없고 상속문제 등이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엄마와 아저씨도 한동안 그렇게 지내셨다. 그러다 몇 년 전쯤 혼인신고를 하셨다고 한다. 엄마가 먼저 나에게 말해 준 것은 아니다. 대화를 통해 유추한 내가,
“그럼 혼인신고하신 거예요?”
라고 물어보자 그렇다고 했다. 엄마의 시아버지가 되는 분의 강경한 요구로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잘하셨네요”
라고 나는 말했다.
단언컨대 그 말은 진심이었다. 부부의 연을 맺어 함께 살기로 한 이상 법적으로도 확실한 관계가 엄마에게 나쁠 리 없으니까.
내 이성은 분명 잘 된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이 저릿했다. 얄팍하나마 엄마와 나 사이에 존재하던 유대감이 더 옅어지은 것만 같았다.
엄마는 내가 속한 이쪽 세상에서, 새 가족이 속한 저쪽 세상으로 옮겨갔다.
엄마의 가족 관계 증명서에는 아저씨와 두 자녀의 이름이 적히겠지. 거기에 내 이름은 없다.
나라에서 발급해 주는 서류가, 너는 엄마의 친자이기는 하나, 가족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전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일종의 확인사살이라고나 할까. 뭔가가 하나 더 날아와 꽂혔을 뿐이다.
엄마는 괜히 멋쩍은 지,
“엄마 죽으면 집은 너한테 상속된단다.”
라고 하셨다.
엄마와 아저씨가 함께 살고 있는 집은 엄마 명의로 된 엄마 집이다. 결혼 전부터 살던 집이니 온전한 엄마의 재산인 것이다. 법적으로 뭐가 어떻게 되는지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친자인 내가 상속자가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는 말인가. 나는 엄마의 재산에 관심이 없는데.
나는 엄마의 새로운 가족이 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의 남편이지만 내 아버지는 아닌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고, 얼굴도 본 적 없이 이야기만 줄기차게 전해 들은 그들을 내 동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서류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나. 너는 가족이 아니라고.
엄마의 인생에서 나는 그만 퇴장해야 하는 것일까. 6살 때 한 번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으려 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을까.
엄마를 다시 만나고 좋은 순간도 많았지만, 답답하고 힘든 순간들이 더 많았다. 아물 줄 알았던 상처는 더 헤집어져 덧이 난 듯하다.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공허했고, 채워질 줄 알았던 마음의 공간은 더 비워져만 갔다.
지금까지처럼 내 속마음을 숨긴 채 엄마를 대한다면 이 관계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엄마와 통화만 하고 나면 며칠씩 우울해지는 게 싫어서 엄마와의 연락 자체를 꺼리게 되는 이 관계가 과연 지속할 만한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 속이 문드러질 것 같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나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로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인연의 끊을 놓아야 할까.
아직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둘째 출산 이후로 엄마도 나도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고 있다. 이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게 될지도.
나는 아직 먼저 손 내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엄마에 대한 감정들이 정돈되어 가는 것과는 별개로, 엄마에게 한 발 다가서는 것은 쉽지 않다.
아직은 용기가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