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에 대한 의심
한국과 일본은 나이 계산법이 달라서 항상 헷갈린다.
일본은 만 나이를 얘기한다. 그래서 생일날이 되면 한 살을 더 먹는다. 반면에 한국은 세는 나이를 이야기하고, 1월 1일이 되면 한 살을 더 먹는다.
새해가 되면 한국 나이가 바뀌고 일본 나이는 그대로다. 생일이 되면 일본 나이가 바뀌고 한국 나이는 그대로다.
이러다 보니 도대체 내 나이가 몇 살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누가 물어도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음.. 그게.. 그러니까.. 지금이 2019년이니까.. 음.. 만으로는 3X살이 되고.. 생일이 지나면 3Y살이 되고.. 그러니까 한국 나이로는 3Z살이네요.
매번 이런 과정을 거쳐 대답하다 보니 어느새 나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어쨌거나 나는 얼마 전 30대 중반 언저리에서 한 살을 더 먹었다.
생일날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생크림 케이크를 유독 좋아하는 첫째 아이와 역시나 생크림 케이크를 유독 좋아하는 내가 함께 맛있는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구실이 생겨서 좋았다. (어쩌면 이렇게 입맛도 기가 막히게 닮는지)
그래도 엄마 생일이라고 케이크에 올려진 딸기 6개 중 2개는 양보해주었다.
어렸을 때 나는 내 생일이 정말 그 날짜가 맞는지 항상 의심했었다.
자식에게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버지와, 음력 생일만 생일로 치는 할머니가 내 양력 생일을 제대로 알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를 다시 만나고 처음으로 엄마 집에 갔던 날, 엄마방 책상에 놓인 탁상달력에 내가 알고 있는 그 날짜가 표시되어 있었다. 어른들이 내 생일이라고 했고 그래서 내 생일이라고 치기로 했던 그 날짜가.
형사들이 사건의 증거를 찾으면 이런 느낌일까. 비로소 오래된 나의 의심이 풀렸다.
내 생일에 대한 의심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그 의심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내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내 생일이 이 날이 맞나’라는 의심, 즉 할머니나 아버지가 내 생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은, 바꾸어 말하면
‘내 생일이 누군가에게 기억될 만한 날인가’
하는 질문이 된다. 기억할만하다는 것은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는 것이므로 그 질문은 곧,
‘내 생일이 누군가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날인가’
하는 질문이 된다. 그것은 결국
‘나의 탄생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었을까’
하는 물음으로 치환되어,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내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존재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내 옆에 없다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던 이유는, 엄마가 사라짐으로써 내 존재의 이유도 함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려운 말 따위 이해하지 못했을 어린아이가 품었던 의심은, 표면상으로는 생일에 대한 의심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존재에 대한 의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의심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내 마음 깊숙이 뿌리를 내려 나를 자신감이 없고 주눅 든 아이로 자라게 했다.
아직 아이가 태어나기 전 어느 해, 생일날이 지독히도 우울했던 적이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 우울함에 기름을 부었다.
그전까지 내 생일날에 부모님이 전화나 문자로 축하를 해주신 적이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연히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과 겹치게 되면 축하를 해주셨던 것 같긴 하다.
나 역시 부모님의 생신을 잘 챙기지 않았다. 아버지의 생신은 대체로 그냥 넘어갔고, 엄마의 생신에는 문자나 전화를 하는 정도였다. 엄마와는 서로의 생일에 선물을 주고받은 적이 몇 번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내가 부모님의 축하를 못 받았다는 사실에 서운해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날은 유난히 우울했다. 엄마의 말에 몇 번 상처를 입고 마음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던 때였기 때문이었을까.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생일을 축하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내 존재의 이유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내가 섭섭해하더라는 얘기를 남편에게 전해 들은 엄마는,
“지가 전화하면 되지!”
라고 하셨다.
맞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일날 부모님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들의 생일날 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부모가 나의 탄생을 기뻐하고, 내 존재를 기뻐한다는 자신감 말이다.
그런 자신감이 부족한 나는,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입 밖에 내기가 참으로 어렵다. 감히 내가 감사해도 될 일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나의 복잡하고 어그러진 내면을 모르는 사람들은 종종
“어려운 환경에서도 반듯하게 잘 자랐네요”
라고 말한다.
겉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특별히 비행을 저지른 일도 없고, 공부도 썩 잘했고, 대인 관계나 사회생활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잘 해왔으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어린 날에 겪은 부모님의 이혼과 부모님의 부재가 지금까지도 내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말이다.
한 번씩 심연에서부터 뻗어 올라온 손길이 나를 어두움의 나락으로 내리꽂는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도 나의 무의식을 건드릴 만한 소재와 마주치면 어김없이 나를 향해 뻗치는 손길이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한없는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들, 슬픔과 고통과 원망 미움과 자책과 후회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한참을 허우적거리다가 바닥을 치고 나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내 내면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한결같이 나를 바라봐주는 남편의 사랑은, 나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고 죽음 이외의 방법으로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상대가 내 옆에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의 사랑이 내 존재를 지탱해 주었고,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횟수도 줄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삶의 포커스가 내가 아닌 아이에게 맞춰지면서 그 횟수는 더 줄어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이 주는 위로와 기쁨이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기에 심연의 손길에 쉽게 이끌리지 않으며 이끌린다 하더라고 비교적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고 어두움과 무기력이 나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적절한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심하고 있는 순간 훅 치고 들어와 나를 잡아당기는 강력한 손길에 끌려가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는 끝이 없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잘 보살피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좀 더 튼튼한 방패막을 마련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최근에 읽은 책에서 나는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내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었다.
외부 환경이 어떠하든 간에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 책임이다.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달려있다.
우리는 항상 '경험'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그것이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삶의 일부다.
부모님의 이혼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내가 겪어야 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억울했고, 그 억울함이 부모님을 향한 원망과 미움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그 고통은 내 '책임'이다. 부모님의 이혼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그 일은 내 삶에 일어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 몫인 것이다.
언제까지고 원망과 미움의 감정들에 휘둘리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거기에서 빠져나와 내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다.
솔직히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책임이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여전히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이기는 것이 내 삶에 더 유익하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들러의 심리학이 떠올랐다.
아들러는 트라우마의 존재를 부정했다. 과거의 원인에 주목하여 현재를 설명하려 든다면 인간의 삶은 전부 과거에 의해 결정이 된다는 결정론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아들러는 이 점을 부정하면서, 인간은 어떠한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결국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는 스스로의 선택인 것이다. 경험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크 맨슨의 말과 맞닿아 있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처음 접했을 때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다. 지금은 조금씩 삶에서 부딪히는 사건들을 그와 같은 시작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온전히 체화되기까지는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이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튼튼한 방패막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생일에도 나의 부모님들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물론 나도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울하지도 않았고, 내 존재의 이유를 의심하는 일도 없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나아질지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에게 내 존재가 기쁨이 된다는 확신도 여전히 갖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내 삶이 과거의 지배로부터 한 발짝씩 벗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경험에 지배받지 않고 경험을 책임지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