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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그릇 Aug 13. 2019

6. 엄마와 산후조리-2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갑자기 오겠다는 엄마의 말에 남편은 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알아봤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가 산후조리를 해주러 오지 않으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같은 교회에 항암치료를 앞둔 분이 계셨다고 한다. 몇 차례씩 반복되는 항암치료에 몸이 너무 쇠약해져 다음 항암치료를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었고, 음식도 잘 먹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분이 항암치료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입에 맞을 만한 음식을 해서 갖다 드리느라 첫째가 태어나고 세 달이 다 되어서야 오신 것이다.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주던가. 혼자서 서운해하고 울분을 터뜨린 나만 나쁜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호강에 겨웠다는 말은 좀 심했다.)



엄마는 3주 동안 있다 가셨다.

어렸을 때 이후로 엄마와 한 집에서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 지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시기 전부터 긴장이 되었지만, 내심 많은 대화를 나누고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나는 엄마의 지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듣고 있었고, 가끔씩 어릴 적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는 화제를 돌렸다.


아이를 케어하는 방식 때문에 엄마와 부딪히는 일도 종종 있었다.

너무 졸려서 칭얼거리다 못해 자지러지는 아이를 애기띠로 안으려고 하자, 엄마는 더운데 무슨 애기띠냐며 애가 덥고 갑갑해서 더 운다고 내려놓으라고 했다. 내려놓자 더욱 자지러지는 아이를 애기띠에 욱여넣다시피 안고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내가 보기에 아이는 분명 졸려서 칭얼대는 것이었는데 엄마는 나의 판단을 무시하고 본인의 판단을 강요했다.

좀처럼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아 아이가 잠든 후에도 한참을 집 주변을 서성거리다 나를 찾으러 나온 남편과 함께 들어갔다.

애는 내가 더 잘 키운다는 듯한 엄마의 태도와 말투로 인해 나는 종종 속에서 욱하고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잘 키울 거면 나는 왜 버리고 갔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뱉지 못하고 삼켜버렸다.


첫째 아이는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젖을 거부했다. 엄마 젖보다 훨씬 빨기 쉬운 젖병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나는 유축한 모유를 젖병으로 먹이면서도 어떻게든 직접 젖을 물리기 위해 노력했다.

분유를 먹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분유값이 비싸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조언과 인터넷에서 찾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두 달이 되도록 아이의 젖 거부는 나아지지 않았다. 처음에 잘 나올 때만 조금 빨다가 5분이 채 되기 전에 울기 일 수였다. 그마저도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나는 결국 엄마의 말 때문에 모유수유를 포기했다.


엄마: 왜 안 먹지? 젖이 맛이 없나?

나: 유축해서 젖병으로 주면 잘 먹어요. 젖병에 익숙해서 그런 거예요. 엄마 젖 빠는 게 젖병 빠는 것보다 몇 십배 더 힘들대요.

엄마: 그래? 그래도 애기가 엄마 젖을 더 좋아하지 않나? 젖이 모자라나? 짜도 얼마 나오지도 않네.

나: 유축하면 원래 애기가 빠는 것보다 적게 나와요. 직접 수유하면 분유 안 먹여도 될 만큼 나올 텐데 유축해서 먹이니까 모자란 거예요.


이렇게 나는 엄마의 부정적인 코멘트에 일일이 해명을 해야 했다.

하루는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고 옷을 주섬주섬 추켜올리고 있는 찰나, 엄마가

"아가, 엄마가 또 니가 싫어하는 젖 물릴라 한다. 우짜지?"

라고 말했다.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리고 슬퍼졌다. 엄마의 그 한마디는 아이를 위한 나의 고군분투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졸지에 나는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는 나쁜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직 엄마가 우리 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 나는 모유수유 포기를 선언했다. 더 이상의 추진력이 나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내 선택이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선택에 엄마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상처 받은 것도.  


물론 모유수유 안 한다고 큰 일 나는 거 아니다. 젖 물리기를 시도하고 안 되면 분유 주고 유축하고, 3-4시간마다 돌아오는 이 사이클이 너무도 버거웠기에 그냥 내버려둬도 곧 그만둘 지경이긴 했다.

하지만 스스로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납득할 때까지는 노력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조용한 지지와 협력을 바랐다. 적어도 그런 식의 찬물 끼얹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는,

"그래도 소젖보다 엄마 젖이 낫지."

라고 말하면서도, '애가 그렇게 싫어하는데 굳이 그래야겠냐'라는 모순된 태도로 은근히 나를 비난했고, 그 비난 앞에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엄마는 나를 칭찬하고 인정하고 북돋워주는 말은 잘하지 않았다. ‘제법이네’ 정도가 엄마에게 받아본 칭찬에 가까운 말이었다.

대체로 부정적인 면들을 지적하고 ‘니가 그렇지 뭐’라는 식의 깎아내리는 말들을 많이 했다.

남들 앞에서 자식 칭찬하는 팔불출이 되지 않기 위해 그러셨는지 모르겠다. 내 앞에서는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그랬는지도.


하지만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6살 어린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인정과 칭찬을 갈구한다. 표현이 서툴러서 그러신 걸 거라고, 사실은 많이 사랑하고 계실 거라고 그렇게 달래 보지만 쉽지 않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본 엄마는 도무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른의 시선으로, 몇 번을 넘겨짚고 넘겨짚어야, 나를 위하는 엄마의 마음을 겨우 들여다볼 수 있다.


엄마의 사랑은 참으로 해석하기 힘들다.

엄마의 말과 행동에 혼자서 열을 내다가, 이러저러해서 그랬겠지 혼자서 추론을 하고 이해하려 애쓴다.

공황장애로 휴직했을 때도 그랬고, 산후조리하러 오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엄마의 말에 실컷 상처 받고, 나중에 혼자서 '갱년기여서 그러셨겠지', '엄마에게도 못 올만한 사정이 있었구나'라고 납득한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언제까지 나 혼자 이렇게 상처 받고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동동거려야 하나 싶어 화도 나고 지친다.



분명 서로가 보고 싶고 그리워 다시 만났을 텐데, 왜 이렇게 어긋나기만 하는 걸까.


아무래도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무의식 중에 만들어진 이상적인 어머니상이 내 안에 존재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어머니상은 실재의 내 어머니와 많이 동떨어져있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헌신적인 엄마의 모습을 나는 원했다. 하지만 내 엄마는 무뚝뚝하고 표현에 서툴며 그다지 헌신적이지도 않다.


물론, 내가 바라는 어머니상을 엄마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다.

다만 엄마와 떨어져 지낸 세월만큼이나 벌어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것이 쉽지 않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이겠지. 엄마가 주변에서 보아 왔던 이상적인 딸의 모습과 나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나 또한 무뚝뚝하고 좀처럼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으며 연락도 잘하지 않는 어찌 보면 모질고 냉정한 딸이니까.



우리는 닮았다. 닮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기도 하지만, 닮아서 더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다.

상대를 나와 똑같은 기준에 놓고,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나와 닮았을지언정 같은 사람은 아니다.


엄마에게서는 거의 매번 내가 기대한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기를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 겪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여전히 현실의 엄마보다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좇고 싶은 것일까.


엄마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는 엄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엄마로부터 멀리 도망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남은 건 나의 선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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