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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Jul 04. 2017

러시아로 떠나는 배 안에서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여행의 목적, 의의를 떠올려본다.  한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간단하고 명료한 문구를 찾아 헤매본다. 그저 떠나보면 알게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일지도 모르는데, 그 문장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여행의 어느 짧은 찰나를 놓쳐버리고 만다.  살아온 속성 때문인가.


나는 항상 목적과 의의, 그리고 과정을 거쳐 결론 도출에 이르러야 하는 보고서를 쓰는 직장인이였다. 뭐라도 정리해 놔야 하는 강박관념에 아이패드를 열고 말았다. 러시아로 가는 배 안의 어느 귀퉁이에서 백수가 된 예전의 직장인은 '자신을 위한 여행 보고서'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여행을 왜 떠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있지 않기에 누군가는 인생 전체를 풀어내야 하는 길고 긴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처음부터 생각할 필요없는 거추장스러운 타이틀일수도 있다. 나에겐 무슨 의미일까?  근데 왜 이렇게 찾아헤매려 할까. 잠이 와서 고개를 꾸벅거리다가도 다시금 게슴츠레 눈을 뜨고서 고민하는 것은 무엇을 찾기 위함일까.  다시 더듬거리며 지난 시간들을 기억해본다. 


언제 여기까지 날아온 것일까. 그리고 어디까지 날아가게 될까.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30대, 엄마가 되기 전에 누릴 수 있는 여자 사람의 마지막 자유로운 이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사실 아이가 생길지 안 생길지는 모르는 일이다. 언제까지고 백수일지도 모르는 일인데 이게 마지막이라는 건 누구의 판단일까. 작년 7월에는 난 무얼 하고 있었나. 그 때, 그러니까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하고 있었을까.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 내일이다. 그러니 내일을 없을 것 같아 지금을 즐기기 위한 선택이라는 말은 그저 누군가에게 빌려 쓴 표현일 뿐이다. 진짜 내 이야기는 아직 찾지 못했다.


나는 왜 이 여행을 선택한 걸까.


잔잔한 파도 위에 흐린 하늘이 잔뜩 구겨져 있던 동해를 떠나온지 10시간이 넘어 섰다. 비록 아직 내가 가야 할 시간이 남아있지만 배안에서의 하룻밤을 넘어서자 거의 다 온 기분이 든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앞으로 두 달, 나는 길 위를 달려야 한다.


대학생 때 젊어서는 사서 고생을 한다는 말을 실천했다. 한달에 세번 공부 못하는 아이를 찾아가서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과외를 세달 만에 그만두고 매일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커피숍으로 파스타집으로 재즈클럽으로 달려갔다. 때로는 저녁을 거르고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수업을 한 곳으로 쭈욱 몰아 넣고 목, 금, 토요일에는 알바의 향연을 펼치곤 했다. 돈은 조금씩 벌었지만 그 곳에서 작은 행복을 얻었다.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와는 다르게 고졸 출신에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알바생활만을 하던 '주희' ,  멀끔한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지고 있던 오래된 커플, 일년 연봉이 400만원이라는 기타리스트, 아주 돈을 잘 벌 수밖에 없는 사장님들과 적당히 돈을 벌어도 어설프게 타협하고 싶지 않은 사장님까지. 일년에 천만원 가까이 냈던 등록금에 학기마다 과제 하나를 제출하기 위해 재료비를 들이부어야 했던 학과의 친구들과는 많이 다른 사람들, 어쩌면 사회를 알아가기엔 대학은 너무 좁고 그들만의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학의 친구들과의 거리감을 일찍 느꼈던 것 같다. 술마시고 예술을 논하며 작품을 만들고 밤새워 어설픈 논리로 거창하게 부풀리는 것 따위에 처음부터 부적응자였음을 아주 멀리 돌아와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학시절과 맞물린 알바 생활은 내게 꿈꾸는 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했다. 이룰 수 있는 꿈만 꾸었다. 어떤 삶을 살고 싶다라든지 누구를 만나고 싶다, 무엇을 갖고 싶다 등등. 많은 것들이 그 때 결정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언젠가는 20대의 내가 그어놓은 선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렇게 현실에 꿈을 하나씩 가져다 놓았다. 시간당 4000원도 되지 않았던 돈들이 400만원이 되었을 때 유럽여행을 떠났다. 낡은 아빠의 사진기가 사망한 것도 그 때 였다. 두 권의 노트를 빼곡히 채웠던 일기장도 그 때가 마지막이였다. 4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첫 연애가 끝이 났다. 꿈이 사라진게 아니고 현실에 놓여지지 않는 꿈을 더 이상 꾸지 않았다. 꿈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이제 와서 러시아로 가는 배 안에서 새삼스럽게 떠올린 단어가 꿈이라는 게 우습다.

여행의 시작은 나의 동반자의 꿈이였다.  그 작은 실타래를 함께 풀어보기로 마음 먹은 것은 나였지만. 어쩌면 내가 함께 갈 수 있을지도 몰라. 툭 내뱉은 말이 시작이 되어 하나씩 실천에 옮겼다. 작은 스쿠터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네바퀴가 너무 무서웠던 나에게 두바퀴가 오히려 쉽게 느껴졌던 것이 신의 한 수 였다. 뚜껑없이 달리는 바이크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어느새 나는 면허를 땄다. 어설프게 시트에 앉아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하루를 달리고 나면 온 몸의 기운이 쫙 빠지기 일쑤였다. 꿈 속에서 코너링을 하곤 했다. 몸을 기울이고 스로틀을 당기다 눈을 질끈 감고 암흑이 찾아오는 밤을 맞이한 다음 날에도 다시 바이크에 몸을 실었다. 동반자의 꿈이 어느새 부부의 꿈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의 동반자의 꿈에 내가 얹은 것은 작은 파동이였다. 그리고 그 파동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나 모르게 그려놓은 지도를 그가 펼쳐놓은 어느 날, 내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이미 모든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무난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지원한 회사에 합격했다. 여러 사람과 만나 다양한 연애를 했고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멋진 남자를 만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결혼에 골인했다. 더 이상 바란다면 더 이상 꿈꾼다면 그건 너무 과한 것이라고 이제 내 삶은 풍족하다고 믿었다.


다시 여행을 준비하며, 꿈을 꾸기 시작한 후에야 내가 풍족하다고 믿는 삶의 작은 틈을 발견했다. 작은 틈 사이로 다른 인생이 펼쳐져 있고 그 틈이 어느새 지금 내가 서 있는 안정적인 일상을 위협했다. 위협은 희망이였고 새로운 시작이다.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과 다시 풍랑을 만나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이 싸우며 두려움과 설레임이 동시에 찾아왔다.


고생이 될 길을 선택하는 건 젊음의 객기이다. 이제 내가 다시 어려운 길이나 무모한 도전을 할 이유가 없다. 남들처럼 아이를 낳고 하나씩 차근차근 밟아나가다 보면 아름다운 중년, 훌륭한 노년을 보내는 것 외에는 다른이와 다를 게 없는 인생을 살아갈 거라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 사이로 다시 꿈이 찾아든다. 평온하던 일상에 흥분이 스며든다.  어느새 십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시절 알바로 돈을 깨알같이 모았던 그 여행의 무서움이 다시금 찾아왔다. 내가 왜 떠나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근대는 가슴을 움켜쥐고 볼이 발개진 채 가방하나를 가득채워 어설프게 떠났던 그 날의 그 기분이다.


사서 하는 고생을 다시 시작한다. 편하게 비행기타고 철도에 몸을 실어도 되는 길을 3,600km를 미리 달리며 길들여 놓은 스크램블러와 함께 달린다. 10,000km의 러시아의 광할한 대지를 두바퀴로 넘어보는 여행이다. 왜, 어쩌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설레임에 이끌려 두려움이 시작되자마자 어느새 나는 바이크와 함께 배에 실려 있다.


신랑의 꿈이 부부의 꿈이 된 사연이라고 쉽게 풀어본다. 우리를 아끼는 지인분은 이 여행을 작은 연못을 벗어나 큰 바다로 헤엄쳐 가는 흰수염고래 같은 우리의 도전이라고 멋지게 말해준다.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과 어설픈 마티니 한잔, 티 한잔을 마신다. 어쩌면 나는 이 세잔을 마시려고 떠난 것 아닐까. 예전의 그 설렘이 다시 찾아왔음을 기억하기 위해 이 배위에 올라탄 것 아닐까.


일상에 매몰되버린 나의 꿈이 다시 현실로 돌아가지 않고 날개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꼭 이루지 않아도 된다고 꿈꾸는 청춘이 아름답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미디어의 환상을 나는 이미 깨버린 사람이라고 그 따위 말로 현혹되기에는 젊은 시절의 고생을 이미 다 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내가 말하는 이 여행의 본질은 꿈꾸는 청춘의 그 때 그 마음이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보이지 않는 거라고 내일은 더 나을 꺼라고 그렇게 열병을 앓았던 때가 다시 찾아왔다.


내가 왜 떠났는지 모르겠다. 그저 두근대는 가슴이, 엄습해오는 두려움이 다시 내 20대의 첫 여행과 똑같이 닮아있다.


지난 9년간 기승전결이 살아있는 보고서를 써야 했다. 표지 다음 첫장에 목적와 의의를 컨펌받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였다. 한 단어에도 힘을 들여 신중히 골라 써내려갔던 습관을 버려야겠다. 목적과 의의 따위가 별거 아닌 장 채우기에 불과한 일임을 인정해버리면 그 시간에 쏟아버린 내 삶의 조각들마저 별거 아닌 일이 되버릴 것만 같았다. 별 거 아닌 삶을 사는 게 왜 그렇게 싫었을까.  그게 뭐 대수라고, 잘 살고 싶음을 넘어선 욕심을 부렸을까.


이유 없이, 목적 없이 그만둬버린 회사이다. 어쩌다 동반자의 꿈에 얹여진 나의 도전이다. 특별하게 만들기 위한 포장은 필요없다. 난감하지만 이 여행은 그저 두바퀴에 오래도록 앉아 달리는 것, 단지 그 뿐이다.


다시 꿈꿔본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무엇을 향하는지 알게 되면 좋겠지만
모른채로 그저 달려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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