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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Oct 23. 2017

부부라이더와 청년라이더

당신의 여행을 응원한다.

십 년 전, 여행의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는 곳은 숙소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나와 비슷한 나이 때의 대학생들, 같은 도시를 선택한 우연이 인연이 되어 며칠을 같이 다니거나 다음 도시에서의 만남을 약속하기도 했다. 십 년이 지난 지금 여행의 친구들을 만나는 법은 SNS로 바뀌었다.


오래 묵은 먼지같은 케케묵은 얘기지만 우리의 인생에 등장한 SNS가 나는 낯설다. 단 몇 줄과 사진으로 모든 것이 기억되고 반복되는 것이 싫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을 기록하고 누군가와 소통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 여행이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우리 둘의 선택이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누군가의 선택과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르추크츠에서 만난 청년들은 그 SNS를 통해 만난 동생들이다.  우리보다 2주 먼저 출발하였지만 타 기종과의 동행을 선택한 탓에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이 도시에 머무르고 있단다. 게다가 한 친구의 빈티지 바이크가 길에서 터졌다는 소식을 보고 어떻게든 밥 한 끼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와는 다른 조건일 게 분명할 테니, 그들의 용기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만난 우리, 열무와 고자 그리고 마노와 문.

서로 다른 기종으로 출발한 그들도 이쯤에서 각자의 여행으로 돌아간단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리고 씩씩한 청년들. 분명 내게도 그들의 시간이 있었을 텐데, 나보다 일찍 직장을 박차고 나온 용기를 칭찬한다.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도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이 여행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얻어가게 될 것이다.


서로의 통성명과 여기까지 오면서의 에피소드들을 한참 풀어놓으며 웃고 떠드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어떤 일을 하는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알겠더라. 모두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긴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들고서 출발한 여행일 것이다. 새삼스레 그들의 나이였던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지난 일일 뿐이야.


나는 과거의 일은 항상 흘러보낸다. 곱씹을 필요도 반성할 이유도 없다. 그저 나아갈 일, 앞으로 잘하면 될 뿐이라 잘못한 일들, 나쁜 일들까지도 그저 흘러 보냈다. 과거는 바뀌지 않으니까.


나보다 훨씬 빠른 선택을 한 친구들을 보며 지난 일일 뿐인 과거를 새롭게 생각했다. 만일, 직장인 3년 차였던 시절에 그만두고 유학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힘들었던 짝꿍과의 연애를 포기하고 낙향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좀 더 일찍 이 여행을 올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까.


삼십 대 중반, 구 년이라는 시간을 꾸역꾸역 채우고 나서야 떠난 여행길에 만난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빠른 방향 전환을 했다. 그들을 보며 같은 도시에 있음에도 비슷한 여행을 하는 방랑자임에도 나는 왜 좀 더 일찍 선택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가 밀려든다.


좋겠다. 부럽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럼 당장 너도 해!라는 말을 혀 끝까지 차올렸다가 삼키곤 한다. 과감히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내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꼼짝도 못 하고 그저 지금을 지키는 일을 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지금의 이 자리를 유지하는 에너지를 가진다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항상 보통의 삶, 고만고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평균의 값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나 역시도 30대가 되기 전에는 좋겠다. 부럽다 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당시 나는 용기가 없었고, 뭘 잘 몰랐다. 그냥 그 자리를 지키며 평균값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쁘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몰랐던 거다. 지금이 이렇게 행복할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소진한 나의 20대 후반, 커다란 빌딩에 앉아 수없이 써내려간 도면들과 보고서, 알 수 없는 컨셉들 속에 파묻힌 그 시간들이 아쉽다.


내게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시간들을 이 친구들을 통해 보게 된다. 그러니 그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겪었으면 좋겠다.  이제 와서 시작한 나의 새로운 도전도 빛나겠지만 그들의 도전이 좀 더 찬란하게 빛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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