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저녁 8시, 하루 13 시간 라이딩.
정들었던 이르추크츠를 떠난다. 떠나온 지 2주 차의 중반, 오늘은 라이딩 7번째 날이다. 동네 산책하듯 이백 킬로 미만의 작은 투어가 아니라 오늘은 820km를 달려야 한다. 우리의 첫 번째 정비소가 기다리는 곳은 노보시비리스크, 러시아에서 5 손가락 안에 든다는 공업도시란다. 그 큰 도시까지 가는 길은 약 6,000 km 정도이다. 내 바이크는 서울에서 출발할 때 3,000km를 갓 넘겼었으니 이제 거의 10,000 km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정비는 긴 라이딩 여행에 가장 고민이 되던 것이었다. 처음 여행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며 바이크에 올라탄 순간의 가장 큰 고민은 나의 바이크 운전실력이었다. 막상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가자 진짜 걱정은 바이크의 고장, 난데없이 나타날지 모르는 사고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일은 예측 불가능이라 걱정한다고 되는 일은 없지만 그 긴 거리를 가는 동안 필요한 점검은 놓쳤다간 또 다른 일이 생길 가능성은 더 커진다. 어디서 점검을 받을 수 있는가를 찾아보는 것, 그것 역시 우리에겐 큰 숙제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개미 한 마리보다 사람 보기 어려운 이 동네, 러시아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두카티 스크램블러를 선택한 건 단순하다. 예쁘고 가벼워서였다. 이 아이의 엔진이 오래도록 검증되고 사랑받았다는 사실도, 그러나 모두가 의구심을 던지는 내구성의 문제도 선택 후에서야 알았다. 모든 것은 예측 불가능, 완벽한 여행에 맞는 완벽한 바이크를 찾는다는 것도 불가능이다. 그럼에도 여행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우리에겐 정비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하나둘 씩 나타났고 우리의 마일리지(주행거리)에 적당한 지점에서 두카티 딜러와 연결이 되었다. 처음 점검지로 생각했던 도시가 출발 일주일 전에 바뀌었다.
우리의 다음 정착지가 정비를 위한 노보시비리스크이다. 출발할 때만 해도 언제 점검을 받으러 갈지 까마득하기만 했는데 시간도 길도 참 빠르게 흘렀다. 그 첫 번째 점검 지를 얼마 남기지 않고 이르쿠츠크를 떠난다. 남은 거리를 계산해본다. 중간에 두 개의 도시를 거치기로 한다. 미리 약속된 시간에 도착해야 점검을 받고 오일도 교환할 수 있다. 그 꿈같은 점검이 코앞이다. 믿기는가. 벌써 대륙의 중간이다.
다시금 시동을 걸고 바이크에 몸을 싣는다. 첫 50 km 돌파하니 200km 가 금방이다. 하루의 시작, 그 첫 시동과 첫 삼십 분은 항상 힘들다. 그러다 몸이 어느 순간 익숙한 그 느낌을 기억해낸다. 습관처럼, 마치 숨 쉬는 것처럼 달리는 것이 가벼워진다.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다 보면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몸에 힘이 빠지며 내가 올라탄 이 바이크가 마치 내 날개가 된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그랬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던 새내기 때도, 처음 누군가를 사랑했던 철없던 소녀 때도, 처음 회사에 들어와 월급을 받으며 택시를 타고 들어가던 신입사원 때도, 처음 짝꿍을 만나 사랑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처음은 힘들고 어려웠다. 순식간에 익숙해지진 않았던 것 같은데 지나고 나서는 항상 쉽게 기억된다. 지금 이 여행의 라이딩처럼 말이다.
오늘도 옛날 생각에 조금씩 남은 거리들이 줄어들고 있다. 신기하게도 풍경은 비슷한 듯 다르다. 자작나무들이 흔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엔 다른 나무들로 가득 차있다. 여긴 좀 다른가 싶다가도 어제 본 풍경과 묘하게 닮았다. 같은 대륙이라 말하기도 애매한 몇 천 킬로미터 멀리까지 왔음에도 러시아네~라는 말을 하게 된다. 내가 본 수많은 자연경관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특별히 무엇이 다름을 만들어냈는지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다. 유라시아의 넓디넓은 광야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다. 길을 따라 오래된 전봇대 몇 개 말고, 저 멀리 마을의 꼬랑지 같은 입간판을 가끔 만나는 것 말고, 듬성듬성 나타나는 주유소와 카페 말고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누군가가 경작한 흔적도 없다. 어쩌면 태초부터 지금까지 쭉 이대로 야생이었을지도. 야생이란 단어의 느낌은 극한의 산꼭대기나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다.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다르다. 태어나서 처음 본다. 그동안의 산과 나무와 하늘과 분명 같은 대상인데도 다르다. 사람의 숨결이 닿지 않은 있는 그 모습 그대로의 자연은 평범한 나무 한 그루, 길가의 풀 한 포기마저도 다르다.
이 넓은 대지에 사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얼마나 척박하고 힘든 땅이었던 걸까. 그 옛날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난 사람들은 얼마나 춥고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 땅을 바이크로 여행하는 우리는 그 야생에 감동한다. 누군가에겐 처절하게 슬픈 땅이었을 이 곳이 어디서도 보지 못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장소가 돼버렸다. 그 매력에 모두들 유라시아 횡단을 꿈으로 삼는 것일지도. 라이딩의 매력도 넘치지만 주변의 황량한 느낌까지 더해지면 이 곳이 정말 지구인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2017년이 맞는 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주유소가 조금씩 나아진다. 제법 카페 같다. 가끔 바이커들도 만난다. 우리도 신기하고 그들도 신기하다. 당신의 모험의 성공을 바란다는 축복을 받고 나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과거의 나를 아는 이가 없으니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이 모습을 꿈꿔본적이 없다.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막상 회사를 떠나고 이 먼 여행을 오니 익숙했던 그 과거가 멀게만 느껴진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쓸데없는 고민을 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러시아에서 되살아난다. 과거의 나는 멈추었던 고민들이다. 여행이 계속될 수록 하루하루 더 뜬구름잡는 생각들만 늘어난다. 나는 바이크 위에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끝도 없이 생각한다. 그냥 끝도 없이 기억을 떠올리고 다시 지웠다가 떠올리기를 반복한다. 지나가는 풍경처럼 기억이 지나간다. 이렇게 성인의 사춘기가 시작된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끓임없는 고민했던 나는 왜 생각을 멈추었을까. 너무 바빴던 걸까. 아니면 어차피 변하지 못할 거라 포기했던 걸까.
점심은 간단히 아주 간단히 주유소에서 해결한다. 커피를 넣어놓은 물병이 말라간다. 남은 길도 앞으로 달릴 길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갔고 앞을 향한다. 나무조차 보이지 않는 커다란 평원 위를 한참 달리다 보니 작은 마을들이 나타난다. 마을을 지나고 다시 평원으로 들어서는 길이다. 그 앞에 차들이 멈춰서 있다.
기차를 기다리느라 차들이 멈춰있다. 우리까지 덩달아 정지를 하고 났더니 길가의 아낙네들과 소녀들이 일제히 차를 향해 달려든다. 열심히 컵에 들어있는 열매를 시식하라고 창문을 두들긴다. 이윽고 컵을 받아 든 차 안의 사람들이 손짓을 하고 빠른 속도를 한 바께쓰를 비워 상자에 담는다. 러시아의 길가에는 아직도 이렇게 노점상이 많다. 노점상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냥 길 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누군가가 따온 열매를 사기를 기다리는 거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은데, 심지어 그들의 집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앉아있는 걸까.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그들을 만나게 된 걸까. 잠깐 시간과 장소를 공유해본다. 저 소녀는 어떤 여자로 자라나게 될까. 잘 산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거친 러시아의 거친 삶을 잠깐 들여다본 덕분에 한없이 겸손해진다.
기차가 지나간다. 갈길이 먼 나는 마음이 조급하다. 아직 반도 오지 못했는데 점심시간을 넘겼다. 날은 맑다. 꾸준히 좋은 파란 하늘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이르쿠츠크의 맑은 날씨 덕분에 이틀을 꼬박 휴가답게 즐겼다. 오늘 도시로 들어가는 길은 저녁을 넘길 것 같다. 주행 거리가 상당하지만 이틀을 쉰 덕분에 몸상태는 아직 쌩쌩하다. 야간 라이딩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끝까지 쉬엄쉬엄 천천히 달리기로 한다.
반을 넘겼다. 이 정도면 마음이 조금 놓인다. 남은 거리 400 km, 나의 시간관념은 300km를 남긴 순간부터 시작된다. 보통 3시간이면 도착이다. 그 3시간은 오늘 12시간의 라이딩의 1/4에 불과한데 실제 마음의 여유는 이 마지막에 다 타버린다. 남은 거리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하늘을 쳐다본다. 300km는 서울과 속 소보다도 먼 거리이다. 충분히 날씨는 변한다. 쫓기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쫓기는 마음조차도 여행의 한 부분이 돼버린다. 숙소에 도착하고 안도의 숨을 내쉴 때마다 행복감이 충전된다. 그렇게 하루를 소진하고 다음날이 되면 다시 이 쫓기는 마음을 겪을 것을 알면서도 시동을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다시 나는 따뜻한 숙소에서 기쁜 밤을 맞이할 것이기에, 하루는 그렇게 반복되며 소중한 저녁을 기다리게 된다.
신랑의 바이크에는 무거운 짐들이 잔뜩이다. 오늘은 그 짐이 유난히 신경이 쓰인다. 러시아의 길 상태가 워낙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진동은 계속되었고 자꾸 왼쪽의 알루미늄 박스가 바이크와 부딪히는 모양이다. 바이크의 상태를 매일 아침마다 점검한다. 볼트 하나 풀린 곳 없는지 혹시라도 어딘가에 이물질이 끼어있진 않은지, 그러다가 부딪힌 자국을 발견하곤 점검할 때 함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아직 남은 날은 이틀, 그 이틀 동안 무던히도 신랑을 괴롭힐 것이다.
사소한 것이라 생각되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바이크에 몸을 싣고 달리기에 바이크의 상태도 내 몸과 같이 돌봐야 한다. 잔뜩 들고 온 장비들과 부품들을 쓸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일을 위해 매일의 점검은 짝꿍의 마음을 날카롭게 만든다. 러시아의 휴게소 음식에 몇 번 손을 대고 말아버리는 짝꿍의 마음, 그 날이 선 상태를 어떻게 해 줄 수 없음이 계속해서 미안하다.
부부 사이라서 더 간단할 수 있는 서로의 배려가, 부부 사이라서 가끔은 더 어렵다. 난 조용히 짝꿍을 기다린다. 내 몸과 마음은 잠깐의 휴식을 원하고 얼마 남지 않은 200km의 휴게서에서의 지체가 짝꿍의 불안함을 배가시킨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컨디션을 최대한 솔직하게 전하는 것이다. 장거리 라이딩의 끝으로 갈수록 체력은 쉽게 떨어진다. 지금 쉬지 않으면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힘겹게 달려야 한다.
휴게소에서 일어나니 밖이 심상치가 않다. 분명 이 시간이면 노을이 시작되며 하늘이 발갛게 물들어야 하는데 회색빛이다. 순간, 후회가 밀려온다. 무리해서라도 그냥 달릴 걸 그랬나 보다. 150km를 앞두고 비가 내린다. 게다가 큰 도시에 들어서기 전 작은 도시들을 지나가야 한다. 차들이 많아진다. 비와 차의 조합이라. 치타에 입성하는 날도 그랬다. 비가 내리면 차들은 아주 느려진다. 폐차 직전으로 보이는 트럭들은 거의 기어 다닌다고 보면 된다. 그 앞을 맑은 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추월하겠지만 비가 오는 늦은 저녁이면 무조건 안전이 우선이다.
한 시간이면 닿을 거리인데 벌써 예상시간을 넘겼다. 이로써 하루 12시간 라이딩을 넘어선다. 어두워진 도로에 차들의 불빛에 의존한다. 거의 체념 단계이다. 우비를 위아래로 챙겨 입은 나는 다행이지만 금방 닿을 것이라 예상한 짝꿍은 바지가 흠뻑 젖었다. 추위와 바람이 그를 얼마나 떨게 만들까. 온통 나의 안전만이 우선인 그는 절대 춥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13시간을 넘긴다. 속도는 60km/h에서 올라가질 못한다. 그래도 이제 도착 도시에 들어왔나 보다. 거의 다 왔다고 웃으며 조금만 더 견디자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블루투스가 끓긴다. 마지막 숙소의 입성을 앞두고 고가 도로에 올라탔다가 다시 회전해서 내려와야 한다. 앞장선 신랑과의 대화 없이 교통상황을 파악하고 적당히 빠른 속도로 건너편 숙소로 들어가야 한다. 대형 트럭들이 이미 주차되어 있다. 곳곳에 웅덩이들이 도로의 상태를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스로틀을 감는다. 저기 눈 앞에 우리의 숙소가 있다. 이 정도쯤이야 내 바이크가 알아서 달려줄 것이다.
이윽고 우리는 늦은 밤, 흠뻑 젖은 상태로 숙소에 들어온다. 야속하게 비는 멈춘다. 온몸이 젖었다. 오늘 같은 날은 에어컨이 없는 숙소라서 볼멘소리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여름이 맞는지 겨울이 맞는지 춥다. 식당의 마감시간은 30분 남았단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다른 바이크들도 있는 걸 보면 꽤 알려진 숙소인가 보다. 하루의 피로를 짝꿍은 탄산음료로 나는 맥주로 씻어낸다.
하루를 마감하며 제일 신나는 건 내일도 똑같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딱히 기다리는 것도 없지만 그 반복되는 하루가 얼마나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지 모른다. 지금껏 항상 무언가를 목표로 삼고 달성하는 재미에 빠졌었다. 일도, 결혼도, 사랑도, 가족도 우리는 그렇게 목표로 하는 것들을 만들고 축하하고 다시 또 새로운 목표를 만들었다. 우리의 유라시아 횡단은 목표가 없는 과정인 여행이다. 어제처럼 오늘도 달리고 내일도 달린다. 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가 아니라 달릴 수 있는 길이 있어서 내일도 시동을 건다. 그 무한반복이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내일이 기다려진다.
참 힘들게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잠이 꿀같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