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원 교육' 감독위원님을 만나다.
내일 배움 카드의 잔고가 0원이 되었다. 마지막 수업은 한겨레센터에서 진행하는 북디자인 아카데미였다. 지원금은 전체 수강료의 반 정도, 남아 있던 잔고가 지원 가능 금액보다 적었던 탓에 더 많은 금액을 내 잔고에서 털어야 했다.
수업은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국가 지원 교육 중에서 단연코 으뜸이었다. 선생님의 수업 방식도 그랬거니와 컴퓨터 사양이나 강의실도 괜찮았다. 그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처음부터 선생님이 맞춤형 수업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수강생의 숫자가 적었던 터라 열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단다. 수업 개강 하루 전에 한분이 포기하셨다는 데 만약 일주일 전에 포기했다면 수업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선생님은 두루두루 한 사람씩 지목해서 질문과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백 시간이 넘는 수업시간, 두 달에 걸쳐 매주 이틀을 꼬박 나갔다. 추운 겨울이지만, 늦잠이 밀려오는 백수 생활 중에서도 그 이틀만은 일어나 버스를 타고 신촌을 향했다. 오랜만에 도시락을 쌌고 매일 복습이란 것을 했다. 덕분에 나의 실력은 여러모로 일취월장했다. 게으름이 밀려들다가도 매일 질문들을 가지고 가서 선생님을 귀찮게 했다. 내 자리는 맨 앞자리, 언제부터인가 나는 항상 앞자리에 앉았다.(학생 때, 직장 다닐 때는 항상 뒷자리였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공지사항이 내려왔다. 이유인즉슨 국가에서 검사를 하러 온단다. 학습목표와 국가가 분류해놓은 교육체계 NCS인지 NCI인지 CSI인지 에 맞춰 제대로 하는지를 확인하니까 꼭 알아두라고 두꺼운 종이뭉치를 다시 선물 받았다.
직장인이었을 때, 관공서에 갈 일이 많았다.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한 번씩 집중적으로 가곤 했다. 허가, 심의 등을 받기 위해 혹은 인터넷으로 자료를 받기 힘들 때 직접 방문해서 얼굴을 익히고 설명을 했다. 어차피 그들도 일하는 것, 나도 일하는 것, 때론 화도 나고 기분도 나빴지만 그게 내가 싫어서라기보단 그들의 삶이 피곤해서 라고 생각했다. 공무원은 말 그대로 땡보라지만 건축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공무원,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한 불신은 있지만 일하는 사람을 몰아세우거나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치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 중에 하나가 나일지도 모르니까. (나쁜 기업에서 일했으니까.)
국가에서 검사를 하러 온다고 하니 그저 시간 때우면 되겠지 라는 느긋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방식이 이상했다. 일단 감독관들이 학생을 뽑아서 시험을 본단다. 그리고 면담을 한단다. 시험이라니, 우습지만 도대체 어떻게 시험을 볼지가 궁금했다. 처음엔 정말 그저 기분 좋은 호기심이었다.
마지막 수업 날, 선생님도, 센터 직원도 긴장한 표정이다. 조심스러운 표정이다. 난 그 표정을 안다. 내가 심의받기 전 마지막 피티를 소장에게 넘기고 그 발표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의 표정이 그랬으니까. 그게 뭐라고 난 그렇게 쫄았던 걸까. 그런데 이들도 쫄았다. 도대체 감독관이 뭐길래.
드디어 그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시작부터 꼬인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한마디 이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때부터 옛 '김실장'이 소환되었다.(전투의지가 화르륵! 백수 되고 나서는 거의 불사르지 않았다.) 감독위원이라는 목걸이를 하고 오신 분들은 본인들이 시험을 보는 것이 우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하면서 계속 평가, 시험이라는 말을 반복했고, 심지어 본인들이 무엇을 가지고 판단하는지 대체 어떤 약력을 가지고 있는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과 그동안의 평가 점수, 그동안 제출했던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에 와서 과제를 보더니 그와 똑같은 과정으로 표지를 디자인하는 것이 시험이라며 계속 컴퓨터 화면 뒤에서 서성거렸다.
진심으로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제가 이 쪽 분야는 몰라서요. 어떤 분들이 신지 궁금하네요. 아까 교수님이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 어떤 전공이신가요? 북디자인 쪽은 어떤 과가 있는지도 잘 몰라서요."
"아, 저는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 쪽이고, 요즘은 출판 쪽으로 과가 세분화돼있기도 해요."
한 분만 대답했다. 그것도 그냥 딱 단답형.
여전히 우리의 뒤에서 서성거리며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삼십 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직장 다닐 때, 제일 싫었던 것 중 하나는 내 컴퓨터 화면을 기척을 내지 않고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후다닥 스크롤을 내리거나 창을 닫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일은 제시간에 해냈고, 쉬는 시간을 내가 조절해서 필요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남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것은 회의가 아닌 이상, 예의의 문제다. 상도덕의 문제다. 그런데, 선생님도 아닌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위원 몇 분이 나를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고 입으로는 말하며 뒤에서 모니터로 내가 어떤 툴로 어떻게 작업하는지를 보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예측컨대 시험을 어떻게 볼지도 그 자리에서 대충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다. 평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말이다. 나의 수업시간을 평가 한다면서 그 정도 준비도 안 해왔다는 것에 실망했다. 최소한 평가를 위한 문제 자체는 만들어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삼십 분이 지날 때쯤 판단이 섰다. 뭔가 잘못되었다.
면담이 이어졌다. 입사 시험도 아니고(감독위원들이 잘했다고 나 취직시켜주는 거 아니지 않은가) 점수받는 것도 아닌데 세 명의 감독관의 앞에는 노트북과 그동안 내게 제출했던 과제들이 프린트되어있었고 질문을 하는 내내 그것들을 뒤적이며 체크를 했다. 질문은 아주 단순했다.
국가가 정해놓은 교육체계에 맞게 진행되었는가.
선생님께서 시험을 고지하고 실제로 그 시간에 맞춰서 행했는가.
이 시험은 얼마 동안 치렀는가. (특정인을 찍어서 물어보았다.)
인쇄에 관련된 기본 용어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예전에 했던 일이 지금 하는 수업과 연관이 되는가.(이 수업으로 스킬을 늘렸는지, 아니면 그전부터 툴을 알았었는지를 질문하려고 물어본 것이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내가 들었던 수업의 제목은 '북디자인 아카데미'이다. 책에 대한 개념, 내지와 표지에 대한 작업 방식의 차이점, 실제 사용되는 인디자인의 활용 같은 내용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마지막까지 할 말을 다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체크리스트에 충실하게 질문을 했다. 무려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나요?
그 말을 기다렸던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시험을 보고 위원님들을 만날 것은 알았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이 수업은 국가지원 수업이지만 저도 돈을 반 이상 냈습니다. 그리고 국가 지원 금액, 그거 제 세금입니다. 저 세금 많이 냈어요. 그런데 지금 위원님들이 제게 시험을 보고 면담을 하는 형식이 평가는 아니라지만 저를 학생처럼 대하시네요. 시험을 치르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오늘 한 것처럼 삼십 분정도 표지 디자인을 하는 것을 보고 평가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됩니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실 텐데요. 특히나 교수님은 더 잘 아실 테고요. 체크리스트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걸 저희에서 와서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걸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은 위원님들 아닙니까. 어떻게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하고 평가는 아니라고 모순적인 얘기를 하시는지, 이런 상황을 돌아가셔서 고치고 바꿔나가는 것을 제안을 좀 해주세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할 만한 데가 자문 위원님들밖에는 없네요. 제가 위원님들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고요."
"저희도 위원일 뿐이지 이 체계를 만든 건 또 아니고......"
그렇다. 그들도 하루 수당 얼마를 받고 위원으로서 정해진 시스템을 돌릴 뿐이다. 그러나 본인들도 알 것이다. 국가가 재취업을 위해 만들었다는 교육이 얼마나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로 인해 돈을 버는 것은 학원과 그들 자신뿐이라는 것을.
내일 배움 카드를 나와 남편 모두 만들었다. 남편은 모두 쓸데없는 교육이라며 아예 사용조차 하지 않았지만 나는 보조금과 내 사비를 털어 꾸준히 무언가를 교육받았다. 마치 국가가 뭔가를 해주는 것처럼 (본인들이 실행하는 사람인처럼) 말하는 자문위원들 앞에서 그건 국가가 해준 게 아니라 내가 낸 세금이라고 말해야 했다. 그 일을 계속하실 텐데 다음 자문위원을 가실 때는 이런 식으로 하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오히려 이 시스템의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우리에게 자문을 구했어야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용자이니 평가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평가를 하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수강생이 나중에 평가를 할 수 있지만 그건 학원의 시설과 선생님에 대한 것이다. 그걸 가지고 다시 국가지원을 받는 학원이 될 수 있는지 국가가 학원을 평가하고 그걸 가지고 학원은 선생님을 평가한다.) 실제로 이 시스템을 돌리는 국가의 돈은 다 세금이다. 내가 9년 동안 냈던 4대 보험이 다 그 돈이다. 그들도 그중에 일부인 수당을 받으면서 나를 평가하러 왔다고, 센터를 검사하러 왔다고 얘기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내일 배움 카드, 국가의 재취업 교육의 취지는 좋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평가를 하고 점수를 매기니까 학원들이 그에 맞춰서 수업을 짜고 점수를 받기 위한 교육을 만들어낸다. 실제 취업에 필요한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필수 요소가 아니라 찍어낸 수업들이 만들어진다. 필요도 없는 툴과 이제는 사용하지도 않는 구시대적인 스킬들만 반복한다. 거기에 수업계획서를 두꺼운 책자로 만들어서 수백만 권을 배포한다. 그 책자에 적혀있는 교육목표가 무엇인지 자문위원이 물었다. 도대체 그걸 아는 게 취업하거나 북디자인을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들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태도가 내게 어떻게 보여질지. 딱 하루 정도 자문위원 행세하면서 거드름이나 피우고 권위 있는 목소리로 얘기나 하러 온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서야 그런 건 아니라며 자신들도 그저 일을 할 뿐이라며 변명했지면 말이다. 나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그 타이틀을 달면 어깨도 좀 올라가고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생각에 으쓱해질 것이다. 그러나 공부 꽤나 하셨고 가방 끈도 기신 양반들이라면 제대로 본질을 보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권위는 찾는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시스템이 완벽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제도이니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고 분명 구멍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문위원들을 보고 그들이 그 구멍을 메꾸거나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평가, 심의는 그렇게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제대로 된 감찰을 기대했으나 작은 권력을 쥐고 으시대는 소심한 갑질을 보았다.
국가지원 교육을 한다는 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면 '장사'의 짙은 냄새를 맡게 된다. 자세하고 친절한 상담사는 처음에는 아주 어렵게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자신들도 계획서를 받아서 의논을 해봐야 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말미에 이 모든 것을 다 가능하도록 어떻게든 도와줄 테니 우리 학원으로 오시라고 말한다. 국가의 정책이 결국은 장사가 되어버리고 마는 현실을 보노라면 감독하지 못하는 국가 탓을 해야 할지 이마저도 장사 속으로 덤벼들고 이윤에만 눈이 먼 개인 사업자들을 원망해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 그러나 둘 중 더 나쁜 쪽을 고르라면 학원이다. 학원에서 고용하는 선생님들이 비정규직에 프리랜서로 대우받으며 투잡을 뛰는 것을 많이 보았다. 고용 창출을 위해 교육을 한다는 곳에서 고용하는 선생님들은 노동법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4대보험은 말도 꺼내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은 잘려도 자신들이 가르쳤던 수업 같은 혜택도 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쉽게 나라를 탓한다. 정책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 정책의 빈틈을 파고들어 자신만의 이익만을 쫓거나 한쪽 눈을 감아버리는 이들이 더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