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로맨스
"나랑 사귀지 않을래?"
그저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신입을 담당한 사람의 친절인 줄 알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상하게 가르쳐 주며 웃는 그의 미소가 따뜻했지만, 나만의 착각이라며 마음속으로 도리질 치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 들은 고백이었다. 마음속으론 너무 기뻐 환호성을 질렀지만, 수줍게 뱉은 대답은 들릴까 말까 한 소리뿐이었다.
그렇게 내 19살의 첫사랑은 시작되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자정을 넘긴 시각.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고요한 밤길을 천천히 지나가는 차 소리와 함께 달짝지근한 여름밤공기 속을 우린 매일 걸었다.
밤늦게까지 일한 다리는 퉁퉁 붓고 아팠지만, 우린 피곤한 줄 몰랐다. 서로 이야기의 귀 기울이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헤어지기 싫어하는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았고, 내가 사는 아파트 뒤쪽 작은 놀이터는 우리만의 아지트였다.
그네에 앉으면 말없이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내 얼굴을 보며 빙긋이 웃는 그, 장난스레 "비켜~"라고 말하면 그네를 살살 밀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예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많은 일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는 누가 봐도 잘생긴 사람이었다. 키도 훤칠하게 크고 얼굴도 배우상이라 인기가 많았다.
우리 반 앞에 우르르 몰려와 내 얼굴을 보고 대놓고 실망한 기색을 보이는 아이들, 나 때문에 차였다며 눈을 흘기고 가는 아이, 괜스레 아무 일도 없는데 오빠에게 말을 거는 아르바이트생, 키는 물론이고 외모까지 차이가 난다며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라 놀려대기 일쑤인 같이 일하는 오빠들까지.
우리의 연애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점점 주눅이 들어갔다. 괜히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오빠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잘 웃는 것도, 자상한 말투도 다 거슬렸다.
나는 그때 분명 알았다. 내가 나에게 짜증 내고 있다는 것을...
아직 학생이라 촌스러운 짧은 단발머리에 키도 작고, 주근깨투성이인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것도.
하지만 자존심만으로 가득 채워진 나로서는 계속 작아져만 가는 내 모습이 용납되지 않았다.
둘만의 시간도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나의 사랑은 환한 빛에 가려져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1년 정도 후, 난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이별을 통보했다.
이해할 수 없다며 몇 달을 편지와 전화, 때로는 불쑥 찾아와 놀이터에서 기다리겠다며 매달리는 그 사람에게 냉정히 대할 수밖에 없었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오빠 옆에 있으면 내가 빛이 나지 않는다고, 점점 작아진다고...
그렇게 내 첫사랑은 나의 쓸데없는 자존심과 치기 어린 질투심으로 끝이 났다.
그저 외로이, 조용히 흔들리는 그네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