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과 오마카세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내 삶을 반추하며
도미. 도불. 이런 단어만 봐도 설레는 순간이 있었다. M&A 업계에 온 뒤로 증상은 한층 심해졌다. 유학파가 아닌 사람들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때 마침 번아웃 비슷한 게 왔다. 작년 7월 부서를 옮겼고 한 서너 달 바짝 고생해서 적응을 마칠까 말까 할 무렵 이번엔 부장님이 새로 오시면서 부서가 리셋됐다. 우리 부서 부장님이 바뀐 게 10년 만이라는데. 나는 또 달릴 수밖에 없었다.
팍팍한 현실의 온도가 충분히 뜨거워지자 일탈의 씨앗이 움텄다. 조용히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한켠에 간직했던 도미의 꿈. 구체화해보니 생각보다 막막했다. 디딤돌로 삼을 만한 해외연수 기회를 찾았다. 없던 희망이 보였다. 냅다 토플책을 주문했다. 곧바로 이어진 주경야독의 삶. 왜 인지 불면증까지 겹쳤다. 생각이 많고 마음은 조급해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잠이 안오면 책을 폈다. 열정에 가득 차 낮에는 일을 하고 밤까지 영어공부를, 남는 시간에 운동을 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스스로가 대견했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버페이스의 결과는 뻔하다. 커피에 의존하던 일상에 부상이 찾아온 건 순간이었다. 이실직고하면 메신저만 켜두고 오전 내내 잔 적도 있다. 몸이 버티질 못하니 금세 이상증세가 나타나 병원을 찾았고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가뜩이나 밀당이 중요한 이 바닥. 밀당 실패는 무리한 기사로, 취재원과 오해까지 생기면서 속상해서 펑펑 울었다. 꼬여버린 매듭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새 부서에 오자마자 기자상을 거머쥔 기대주. 곧 잡을 수 있을 것 같던 토끼 두 마리는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생각보다 지금 삶이 괜찮았다. 원래 이미 가진 건 당연해진다. 어디에서 일하든 누굴 만나든 기사만 쓰면 터치하지 않는 회사. 자유. 기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그나마 덜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친화력은 좋지만 인간관계에 취약한 나로선 최선이다. 흰 구름이나 야경을 보고 싶을 때. 햇살을 받고 싶을 때. 그냥 답답할 때 쪼르르 올라가는 옥상. '법조단지' 타이틀만큼 그 어느 동네보다 보안이 철저한 보금자리. 웬만큼 일하면 섭섭하지 않게 채워지는 월급. 완벽한 싱글라이프. 망각했다. 나는 사실 도미보단 연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빙 돌아 되찾은 일상은 생각보다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