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펼치면 멈출 수 없는 양귀자 <모순> 감상기
친구는 <천년의 사랑>을 고르면서 나에겐 <모순>을 안겨 주었다. 내 제목은 왜 하필 <모순>이냐 투덜댔지만 오랜만의 책 선물은 그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다 읽고 독후감을 내라는 그의 말에 속으로 생각했다. 사흘이면 충분할걸.
선물 받은 두 권 중 철학이냐 문학이냐를 잠시 저울질하다 먼저 집어든 쪽은 <모순>이었다. 다음날 아침 햇살로 충분하게 데워진 거실 한 켠 쇼파에서 첫 장을 펼쳤다. 스무 페이지쯤 넘겼을까. “양귀자 작가는 아주 오래된 분인데.” 엄마의 한 마디는 금세 날 현실로 소환했고 자연스레 여러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아참. 나 더 이상 혼자 살지 않는구나. 밤늦게 달리기를 마치고 와서야 고요한 침실에서 나머지 수십장을 더 넘길 수 있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건 다시 하루밤이 지난 잠실의 한 카페였다. 영상 12도 포근한 날씨에 어울리는 시원한 자바칩 프라푸치노는 한참 전 바닥을 드러냈다. 쇼핑백을 잔뜩 쌓아 두고 말없이 핸드폰만 보던 옆자리 학생들도 어느새 자리를 뜨고 없었다. 작가의 펜이 마무리한 드라마의 흡입력은 향유고래도 죽음으로 몰고 간 대왕오징어 빨판 같았다. 여주인공 안진진이 나영규와 김장우 사이를 쉼없이 저울질하는 동안 쌍둥이인 어머니와 이모의 엇갈린 운명은 점차 잔인하게 그들을 갈라 놓았다.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보니 소설은 빠르게 끝을 향해 달렸다. 길고 짧은 문장의 배열에서 리듬감이 느껴졌고 짜임새는 촘촘하고 탄탄했다.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처음 마주했던 랄프로렌 퍼플라벨 스웨터 한 벌과 견주어도 좋을 만큼.
어느날 나보다 독서량이 족히 열 배는 많은 동생이 말했다. “언니, 아무리 많이 읽어도 글을 쓰는 건 또 다른 얘기더라.” 적어도 난 읽은 만큼은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소설이 중반부에 이르기 전 독후감 담당 뇌세포는 타닥타닥 모닥불 하나를 피워냈다. 글 하나를 짓기에 충분한 뗄감을 모았단 뜻이다. 숯이 되기 전 한시적 존재의 온기와 형태를 조금이라도 기억하기 위해 중간중간 책장을 덮고 뭐라도 끄적여야 했다.
나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예술가로서의 삶을 이리저리 갈망해봐도 작가만이 유일하게 희망적인 선택지가 되어 주었다. 그런 면에서 <모순>은 꽤나 실용적인 가이드였다. 적어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보단 확실히 덜 지루한 선택임이 분명했다. 작가는 총 296 페이지에 걸쳐 인생이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 어려운 말이지만 정작 소설은 술술 읽히는 편이다. 궁금증을 해소한 나는 지체없이 또 다른 양귀자를 찾아, 이를 테면 <천년의 사랑>을 펼쳐들 요량이다. 이 글을 읽고 궁금증이 생긴 누군가가 <모순>을 찾아 서점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