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엔 '빼기'도 존재해.

가난하게 먹기로 했다.

by 나날 곽진영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 오는 사이, 후다닥 청소를 하고 책방을 연다. 책방에 오는 손님을 맞이하거나 손님이 오지 않는 날은 쌓여있는 일을 처리한다.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집이라는 직장으로 출근해서 업무를 한다. 다만 직장인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점심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점심을 차려먹은 기억이 없다. 아이를 낳고 혼자 먹는 시간은 늘 그랬다. 점심은 그저 대충 때우는 시간이었다. 간단하게 라테 한 잔 혹은 빵 몇 개, 그리고 가끔 시간이 나면 라면. (씨익)





보글보글 물이 끓기 시작한다. 수프를 넣는 순간 용암이라도 끓듯 더 힘차게 보글보글 소리가 난다. 그 타이밍에 라면을 넣는다. 면발을 들어 올려 공기에 노출시키다가 어느 정도 익기 시작하면 미리 썰어 둔 대파와 청양고추를 넣는다. 마지막에 계란 하나를 톡! 깨서 넣으면 완성.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 라면. 라면 하나는 좀 아쉬우니 밥 한 그릇 말아서 김치와 곁들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이 기쁨 무엇에 비교하랴. 탄수화물 중독이니 뭐니 떠들어도 바쁜 시간 쪼개어 잘 쓴 후 '맛있는 걸 먹고 빵빵한 배 두드리며 흡족한 마음이 드는 게 왜 나빠?' 싶었다. 물론 그 기쁨이 오래가진 않는다. 금세 살찔 걱정이 한가득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 좋은 소화력이 다 어디 갔는지 다음 날까지 속이 부대끼고 몸이 붓는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았다.


일 년에 한두 번 늘 장염에 걸렸다. 응급실에 갈 정도로 호되게 아팠다. 얼마 전에도 연례행사 같은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양상이 달랐다. 40도 가까이 고열이 났다. 코로나인가 싶어 검사도 했지만 음성이었다. 장염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틀 동안 고열로 정신을 못 차리겠더니 열이 떨어지자마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물 한 모금만 마셔도 화장실로 달려야 했다. 이온 음료만 찔끔찔끔 마시며 겨우 숨만 쉬었다.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전염될까 봐, 아니면 자다가 실수할까 봐 화장실 앞에서 쪽잠을 잤다. 응급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저 단순 장염일 뿐인데,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일주일 동안 먹지도 읽지도 못하고 그저 누워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그동안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꽤 잘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평생 전업주부로만 살던 여자가 몇 년 새 생산적인 사람이 되었다. 조금씩 성장했고 성과도 냈다. 그러면서도 엄마와 일 사이의 균형을 맞췄다. 아이를 돌보며 돈까지 벌고 있으니 이 정도면 멋지게 살고 있는 것 아니야? 어깨가 으쓱했다. '이제 뭘 할까? 난 또 뭘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내 능력을 실험하던 나날이었다.


'이게 정말 다일까?' 갑자기 걸려 넘어진 돌부리에 자부심도 멘털도 와장창 깨졌다.

일주일, 더 이상 쏟아낼 것도 없을 만큼 몸이 비워지는 동안 산산조각 난 마음은 회복할 수 없었다.


7년 전, 세 아이와 숲으로 왔다. 세상의 속도와는 다르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겠다며. 느리지만 의미 있는 매일을 살기 위해 왔다. 그 선택을 하고 달라진 마음, 그 안에서 조금씩 변화된 삶을 기록했다. 그 기록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다. 사람들이 내 삶에 관심을 갖는 것도, 책을 쓰는 것도,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모두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찾아온 기회 앞에서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지금. 숲으로 올 때의 첫 마음과 지금의 내 삶은 일치하는가? 나는 여전히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고 있는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굳건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난을 선택했던 그때처럼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다시 쌓아온 것들을 포기하고 0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지?'


여전히 나는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생각하기를 멈췄다. 지금은 그냥 나를 좀 내버려 두자. 가벼워진 몸과 여유로운 일상이 익숙해지지 않아서 뭘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자꾸 고민하게 되는 순간에도 '충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를 다독였다.


'일단,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지금은 그냥 내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보자.'


그토록 좋아하던 라면, 빵, 과자 등등 밀가루를 먹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는 겁이 나서 먹을 수 없었다. 라테도 함께 끊었다. 유제품만 먹으면 부글부글 끓는 뱃속을 돌보기 시작했다. 차갑게만 마시던 음료를 끊고 따뜻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은 멈추고 담백한 것들을 먹으려고 했다. 처음엔 며칠 그러다 말겠지 했다. 가족도 그랬고 나조차 그랬다. 벌써 그렇게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는 비건을 시작했냐고 하고 다이어트를 위해 저탄고지 식단을 하냐고 묻기도 하지만 그런 건 없다.(뭔가를 지키려고 꼼꼼히 따지는 것조차 나에게는 버거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몸에 안 좋은 것들을 덜 먹고 몸에 좋은 것들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가난하게 먹는다.' 꾸역꾸역 뭔가를 채우기보다 비우려고 한다. 조리 시간을 길게 하기보다는 원재료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선호한다.


뭔가를 더덕더덕 덧입혀 놓은 삶을 하나씩 벗겨내고 알맹이를 만나는 중이다.





가벼워진 몸은 상처 입은 정신을 조금씩 회복시켰다. 대충 때우는 식사가 아니라 나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시간은 자신에게 '쉼'을 선물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었다. 가난을 선택하고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던 6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한동안 자기 계발에 심취해 최선을 다했고, 그리 살아봤으니 멈추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인생엔 '더하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빼기'도 존재함을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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