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이 중요한가요?

한없이 자연스러운 날

by 나날 곽진영


사는 내내 나에게 오전 7시 이전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스름한 새벽빛에 깜짝 놀라 잠들었던 일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그랬던 내가 지난 몇 년을 키워드로 뽑아보자면 '미라클 모닝'을 빼놓을 수 없다. 정확히는 미라클 모닝과의 전쟁이다. 성공 방정식에서 빠질 수 없는 미라클 모닝. 다들 한 번쯤은 그이와 전쟁을 치르지 않았을까. 나 또한 새벽 기상을 실천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다. 매일 알람과 사투했고 부득불 일어났다. 왜?


사람들은 왜 새벽 기상에 그토록 목숨을 거는 걸까. 내가 처음 미라클 모닝을 시도했던 건 한참 남편이 이직을 하고, 셋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앞날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매일 밤 불안함에 잠을 설치고, 밤늦도록 여기저기 블로그들을 기웃대고 있을 때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이란 책을 만났다. 명상, 일기, 독서, 운동으로 이어지는 새벽 루틴을 보면서 나도 시작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새벽 기상을 하면 눈앞의 가난도 미래에 대한 막막함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제 신문을 신청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떠 현관문 앞에 놓여있는 신문을 들고 살금살금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 명상부터 시작해 볼까? 눈을 감고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 잠이 온다. 간신이 버텨 신문을 펼친다. 다시 잠이 온다. 잠이 온다. 잠이 든다...


결국 첫 시도는 실패했다. 아침잠을 설쳐 하루가 엉망이 될 뿐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그때는 절박했다. 절실했고. 스스로 비참해지고 싶지 않아서 뭐라도 대단한 일을 해내고 싶을 때였다. 살면서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부지런함'과 '열정'이 움트는 시기였다. 새벽 기상 모임에 들어갔다. 매일 아침 5시, 카톡에 "좋은 아침입니다."를 쓰면서 일어났음을 표시했다. 처음엔 사람들과 북적이며 아침을 깨우는 일이 재밌었다. 그것도 며칠뿐이었다. 뒤로 갈수록 간신히 눈만 뜬 채 메시지를 보내고 누운 채로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순환하고 있었다. 그토록 새벽에 일어나려고 안달복달하더니 결국 일어나서 스마트폰이나 만지작 거리고 있다니...!


대체 무엇을 위해서 기적의 새벽을 만나려고 하는가.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왔다. 단지 새벽에 일어나는 것만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걸까? 24시간 중 2, 3시간을 더 많이 사용하면 우리는 성공하는 걸까? 정말 그게 전부라면 새벽 기상 따위 하지 않겠다!



ㅣ다시, 미라클 모닝


뒤도 안 돌아보고 올빼미 생활로 귀환한 나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코로나였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막 퍼지기 시작할 무렵 세 아이와 나의 격리가 시작되었다. 무려 6개월이었다. 학교도,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24시간 내내 우리는 함께 복닥거렸다. 집에 있는 걸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나마 괜찮을 줄 알았건만, 오산이었다. 나는 절대적으로 혼자인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한 순간도 아이들과 떨어짐 없이 집에 갇혀 있으려니 집순이고 뭐고 매일매일 숨이 막혔다. 그게 다시 미라클 모닝을 한 이유였다. '혼자이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올빼미의 새벽을 깨우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새벽은 유일하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시간이었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리면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나 밖을 뛰기도 했고, 실내 자전거에 앉아서 바퀴를 굴리기도 했다. 에너지를 올려서 잠을 깨운 후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집필했다. 꿈꿔본 적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결과물이 생기고 나니 나는 미라클 모닝에 완전히 심취했다. "아이가 셋인데 대체 언제 책을 쓰셨나요?"라고 물으면 미라클 모닝 덕분이었다고 했다. 새벽만이 엄마의 유일한 '생산'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랬다. 새벽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생 올빼미 었던 나도 이렇게 변했고,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새벽 기상을 권유했다. 그렇게 미라클 모닝의 맹신자가 되었다.



ㅣ누구나 미라클 모닝 할 필요는 없다.


얼마 전부터 나는 새벽 기상을 내려놓았다. 하루라도 빠지면 큰일 날 것처럼 새벽을 사수하던 내가 새벽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꽤 큰 결심이었다. '왜 나는 새벽 기상을 하고 있을까? 어떤 기적을 바라건대 이 행위를 지속하는 걸까?' 본질적인 질문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새벽 기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너도나도 훈장처럼 새벽 5시를 타임스탬프로 찍어대고 있는 이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다. 새벽마다 유명한 강사의 강의를 듣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있는 그들은 정말 새벽 시간의 온전한 기쁨을 누리고 있을까? 새벽에 엄청난 생산력을 쏟아내고 있을까? 그러는 나는 새벽에 무얼 하고 있을까?


새벽이 없었다면 나에게도 두 권의 책은 나오지 않았다. 새벽은 나에게 완전한 몰입을 선물했다. 내게 새벽이 필요했던 이유였다. 3시간, 4시간 통으로 집중해야 하는 작업을 할 때 새벽만큼 좋은 시간이 없다. 새벽은 그나마 카톡 메시지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고, 헛짓거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 (TV나 유튜브로 세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지금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업무도 하지만 그것이 꼭 새벽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아이가 등원한 뒤 혼자 있는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고 아이들이 잠든 밤 시간을 이용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상황이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꼭 '새벽'이 아니면 생산의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전 국민이 새벽을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며칠 전 오랜만에 일찍 잠이 든 탓인지 새벽 4시 눈이 떠졌다. 새벽 기상을 경험하기 전이었다면 '빨리 다시 잠들어야지'했을 텐데 어느새 새벽도 자연스러운 시간이 되었기에 몸을 일으켰다. 물을 끓이고 조용한 음악을 틀고 스트레칭을 한다. 따끈한 차 한 잔을 하며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필사한다. 동이 틀 무렵까지 글 한 편을 썼다. 굳이 노력해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아도 내 몸이 움직이는 리듬에 맞춰 새벽을 맞이했다. 한없이 자연스러운 미라클 모닝. 이걸 하려고 그토록 새벽 기상에 목을 맸던 건 아닐까.


존재하지만 선택하지 않는 것과 존재조차 모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삶의 변화를 위해 미라클 모닝을 시도하는 것은 환영이지만 '왜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른 채 남들이 하니까 하는' 미라클 모닝은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몸에 부담이 되면 무리하지 말고 낮잠을 자기도 하고 잠시 중단하라고 하고 싶다. 억지로 잠을 줄여 아침을 맞이하기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나를 칭찬해 보면 어떨까. 서서히 조금씩 기적을 맞이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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