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눈을 떠 한참 아이들과 이불에서 뒹군다. 아이들이 말똥말똥 해진 눈으로 내 품을 떠나면 그제야 이불을 개고 나와 집안에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활짝 연다. 유산균 한 포를 입에 털어 넣고 사과 반 조각, 견과류 몇 알을 먹고 난 후 그제서 의자에 앉아본다.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을 무심히 펼쳐 읽는다. 작가의 읊조리는 듯한 담담한 문장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별것도 아닌 단어는 나를 과거 어느 때로 훌쩍 데리고 간다. 나는 그곳에서 어린 나를 만나 한동안 머문다.
"엄마, 심심해."
막내 아이가 어느새 내 무릎에 앉아 작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고 이야기한다. '어서 나에게 집중해 줘.' 그 따스한 온기가 시간 여행을 떠난 엄마를 붙들고 온다. 이 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음을 안다. 싱긋 웃고 있는 꼬마를 그대로 끌어안고 일어나 거실 한 바퀴를 빙글빙글 돈다. 까르륵 웃는 꼬마의 웃음소리가 내 안을 풍성하게 채운다.
한 달 이상 아이들과 함께 꽤 달콤한 방학을 보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쓸모없고, 효용 없는 시간의 향연. 그 무해한 시간은 내 인생의 커다란 지표가 되어 앞으로의 내 삶을 이끌고 나가리란 예감이 들었다.
첫 책을 출간할 무렵 출판사 대표님이 내 프로필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작가님은 베짱이가 아니에요. 이렇게 하는 일이 많은데. 앞으로 게으르다고 하지 말아요!" 그 말에 빙긋 웃었다. 살면서 들은 최고의 칭찬 같았다.
최근 몇 년 나는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처럼 새로운 세상을 누볐다. 쏟아지는 인풋과 멈출 줄 모르는 아웃풋 사이에서 간신히 균형을 맞추며 춤추듯 누빈 시간. 한 번쯤은,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실제로 도전하고 경험했다. '내가 알던 나는 정말 나였을까?' 때때로 찾아오는 질문에 답하며 나라는 사람을 관찰하고 탐구하고 실험했던 과정은 어느 때보다도 나라는 사람과 친밀해지는 일이었다.
토끼를 따라온 이상한 나라에서의 시간은 마흔이 주는 선물 같았다. 그토록 미워하던 나태한 나와 화해한 시간이었다. 모든 일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듯 나와 가장 친밀해지기도 했지만 나와 가장 다른 모습으로 살기도 했다. 느긋해지고 싶을 때마다 일을 벌였고, 멈추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를 채근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여유는 흔적도 없고 다만 뭐든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한동안 내 모토가 "YES로 답하는 사람"일 정도로 어떤 일도 거절하지 않았고, 닥치는 대로 열심히 했다. 때때로 '이대로 괜찮을까?'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조금씩 시들어가는 마음을 바라보는 게 편치 않았다. 지금 이 상태가 내가 바라던 모습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달리 멈출 방법도 몰랐다. 그토록 경계했던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고 있는 내가 보일 무렵, 다행인지 불행인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으로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멈췄다. 남들이 보기엔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증상이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염려가 컸던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어쩌면 그건 그간 나와 친밀해진 시간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계기'가 필요했던 내게 때마침 찾아온 우연이었다.
나는 그동안 알고 있었으나 설명할 수 없었던, 남과 다르기에 어쩌면 숨겨야 했던 혹은 오히려 나를 꾸짖게 만들었던 게으름에 관한 커다란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게으른 시간이 가진 효용이었다. 게으른 사람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냉혹하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나 또한 그러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하하며 살아왔다. 조금이라도 성실해지려고 나를 채근하고 붙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났지만 말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게으름은 무기력함이나 나태함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쓴 러셀의 말을 빌리면 노는 시간과 사색의 유용함 같은 것이다. 즐길만한 '여유'를 찾는 시간이다. 과도한 노동이나 생산성의 집착에서 벗어나 '즐겁고, 가치 있고, 재미있는' 활동을 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 관한 것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참고)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특성이 '부지런함'이라면 게으른 사람은 그것과 꽤 동떨어져 사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들과 게으른 사람을 비교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자 함이 아니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게으르다'는 말이 가진 모순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보는 것, 덧붙여 모든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게으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