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단어 뒤에 숨은 마음

by 나날 곽진영

코로나와 함께 여행은 마음만 먹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누구는 일 년에 한두 번의 여행을 위해 남은 날들을 버텨낸다고도 하고, 더해서 일 년 전부터 비행기 티켓을 발권해놓고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여행을 그리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떠나고자 하는 욕구가 그리 크지 않은 사람은 코로나로 발이 묶인 지금도 그리 아쉬움을 못 느끼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여행 가기 전의 설렘, 여행지에서의 추억,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는 다음 여행까지 차곡차곡 지난 여행의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은 왜 그토록 여행을 사랑할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여행이 대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런 나에게도 최근 가슴 뛰는 여행의 기억이 생겼다.

재작년 세 아이와 함께 제주를 다녀왔다. 일정 없이, 렌터카 없이, 아이들과 올레길을 열심히도 걸었다. 조준호의 귤꽃을 들으며 귤밭 길을 걷고, 해변에 주저앉아 모래 놀이하는 아이들 옆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버스를 타고 시장 구경도 했다.





세 아이를 데리고 차 없이 여행을 했단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그 여행 이후, 난 여행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 그 여행은 어떤 의미였던 걸까.



어려서부터 버스 타는 걸 좋아했다. 이어폰을 끼고 하늘이 보이고 나무도 보이는 버스 창가에 멍하니 앉아있는 게 그리도 좋았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다 마음이 내키는 데서 내리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학교 가는 길목에 있던 삼청동에 내 마음을 끌어당기기에 적당했다.

삼청 공원까지 걷고 또 걷다가, 그 길 끝에 있는 눈 나무집에서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를 먹는다. 땡볕에 땀을 흘리고 먹는 국수는 어찌나 맛있던지. 기운이 또 불끈 생겨 갔던 길을 돌아온다. 한참 걷다가 보이는 북 카페에서 잠깐 책도 보고 해가 지고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그제야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가끔은 정독 도서관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낮잠을 자기도 했고, 그러다 인사동까지 걸어 내려오던 날도 있었다.


문득 제주 여행이 좋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나에게 여행이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자유였나 보다. 촘촘한 일정을 따라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어디 어디 맛집을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닌, 그날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둘 자유를 만끽했던 공통점을 찾았다. 여행으로 내가 원하는 건 이런 소박한 행복이었으니 굳이 여행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게 아닐까. 그건 몇 박 며칠의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숲에 살고 있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고,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아 창문을 열면 숲이 보인다. 오늘처럼 새벽에 눈이 떠지는 날엔 집 마당에 나가 해가 뜨기 직전의 붉은 하늘을 보면서 신기해하기도 하고, 날이 좋은 밤엔 별을 보려고 산책하기도 한다. 나에겐 그저 일상인 이것들이 다른 사람들은 꿈꾸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누구가에게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누군가에겐 간절한 쉼일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한 템포 쉬어가는 일. 우리는 뭉뚱그려 여행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여행은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를 타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여행이란 단어 뒤에 숨어 있는 자신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흩날리는 바람에 아이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목적지 없이 자유로이 걷는 일, 그 여행을 조만간 또 하고 싶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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