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남편이 출퇴근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경차가 산길에서 미끄러졌다. 자칫 2차 사고가 될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비록 폐차를 시켰지만 다치지 않고 무사해서 이것만으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우리 집 앞 버스정류장엔 한 시간에 한 대의 버스가 다닌다. 남편이 회사에 가려면 그 버스를 포함해 두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지하철까지 나가야 한다. 차 없이 출퇴근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엄두도 내지 않는 일이다. 차가 두 대에서 한 대로 줄었을 때부터 나는 팔자에도 없는 라이딩을 하고 있다. 몇 번 투덜거리니 어느 날은 남편이 한 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 시간을 맞춰 나갔다. '할 만하던데?' 어쩌다 늦잠을 자는 날 빼고는 두 번의 환승을 하고 다시 회사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긴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내게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연하지 않은 선택지를 마주했으나 오히려 그 선택으로 자동차 유지비가 줄었음은 물론이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까지 덤으로 얻었다. 남편은 책을 읽고 글 쓰는 시간까지 확보했다.
사실 우리가 지불하는 많은 소비에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혹은 하지 않으면 더 좋은 것들의 비용도 포함되어있다. 다만 우리는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내가 산속에 사는 사람은 당연히 차가 두 대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사교육을 하지 않는 교육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적어도 사교육비를 지연시켰다. 대신 그 시간에 자기 주도적으로 제 할 일을 하는 법이나 잘 노는 것들을 배우고 있다. 부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실천하기 위함도 있지만 최소한으로 살고 있는 가정 경제의 가장 보탬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술이나 담배를 즐기지 않는 남편의 성향 또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심지어 우리는 배달 음식이 오지 않는 곳에 살고 있어 집 밥을 열심히 해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절로 건강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첫 번째 이유였다. 첫 책을 쓸 때 남편 월급이 180만 원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많이 놀랐었다. 남편의 월급은 여전히 300도 되지 않는다. 적으면 적고 충분하다면 충분한 30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다섯 식구는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옹색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소비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아닌 소비하지 않아서 얻을 수 있는 풍요로움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하나하나의 선택이 내가 돈에 집착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남편이 이직을 하고 우리 부부가 숲으로 가기로 결정한 후 그제서 아뿔싸, 싶었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써야 하는 돈이 늘어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걸 몰랐을 때였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순박하게 이상을 택한 이들에게 내린 형벌 같았다. 그 당시는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다. 당황한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낭떠러지 앞에서 큰 결심을 했더랬다. 남편이 이직한 회사에서 제공하는 하수처리장 안의 관리비 만원만 내면 주거가 해결되는 사택으로 들어갔고, 엉덩이에 깔고 있는 돈을 들고 부동산을 찾았다. 그렇게 현실 세계를 마주했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 거야, 라는 판에 박힌 말을 매일 했다. 새벽마다 경제 신문을 보고 투자와 관련된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유명 강사의 강의를 수강하기 위해 초치기를 했고, 임신 중에도 미어터지는 강의실에 끼어 앉아 3시간씩 강의를 들었다. 그랬다. 이 와중에 셋째까지 임신했으니,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청약 접수를 하기 위해 100일 된 아기를 안고 하루 종일 줄을 섰고, 뜨거운 여름 아직 어린 세 꼬마를 데리고 수도 없이 많은 곳을 임장 다녔다. 2년 동안 갭 투자, 청약, 재개발, 재건축. 뭐가 되었든 가능한 것들은 다했다. 2016년 여름부터 2018년 여름까지. 딱 2년,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물론 운이 좋았다. 그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6년 미친 집값이라고 부를 만큼 부동산이 폭등하던 시기였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우리는 월급쟁이로는 기대할 수 없는 부를 얻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18년 이후에도 부동산은 멈추지 않고 올랐다. 주식까지 거들며 남녀노소 모두 투자시장에 발을 들였지만 정작 그 시장의 한 복판에 있던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았다. 마지막 투자를 할 때 남편과 약속했다. "여기서 멈춰. 충분해." 나는 그 이후로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와 함께 투자를 하던 시기의 사람들이 보기엔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걷어찼다.(만약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투자를 했다면 부동산 책을 쓰고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멈춘 이유는 하나였다. 부자가 되기 위한 투자가 아니었으니까. '틀리지 않았어. 지금이 아니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없어. 너희의 선택은 옳아.' 그것을 증명할 하나의 방법으로 투자를 선택했다.
내 게으름이나 한량 같은 태도에 "너희는 이미 투자해 놨으니 걱정 없지."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미래가 불안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끝이 없어서 가져도 가져도 더 갖고 싶다는 걸. 만족할 수 없다면 평생 허기가 질 수밖에 없다. 계속 더 큰 부를 얻고자 발버둥을 친다. 경제적 자유라는 허상을 좇아 10억이 돼도 100억이 돼도 발을 빼지 못하고 달린다. 그래서 나는 늘 이야기한다. 몰라서 못한 것과 알지만 하지 않은 것은 다르다고. 그러니 덮어놓고 돈만 좇지도 말 것이며, 알지도 못하고 비난하지도 말라고. 정확히 알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멈추는 것. 우리는 좀 더 고차원적인 선택까지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유를 이야기할 수 있다.
'행복의 역치'라는 말이 있다. 행복의 역치란 행복을 느끼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을 말한다. 누구는 급여 소득이 월 700만 원은 되어야 행복하다고 하고, 누구는 급여 외의 파이프 라인으로 월 500만 원은 나와야 부자라고 한다. 나는 남편이 성실하게 벌어오는 300만 원 남짓한 돈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추운 날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도, 마음 맞는 이와 잠깐의 대화에도, 기타를 치며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순간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할 수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그조차 없어도 즐거워진다. 현관문을 열면 만나는 하늘만 봐도 그날의 행복은 충전된다.
게으른 부자로 사는 건 그런 거다. 나는 어느 정도면 충분한 지, 어느 정도면 멈출 수 있는지, 무엇으로 행복한 지. 내 마음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해결된 욕구에 집착하기보다 지금 현재의 행복을 찾는 여정을 떠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