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엔 차로 10분이면 오가는 길을 한 시간씩 서있어야 할 만큼 북적인다면, 가을이 절정이라는 의미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숲에서 살면서부터인지 경계가 모호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을을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총천연색의 화려한 감동은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가을의 선물
이 계절이 되면 자꾸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이유다. 오지랖 없는 내가 별스럽게 오지랖 부리는 계절. 돈이 들지 않는 가장 사치스러운 선물할 시간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매년 이 계절이 되면 가장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가득 흘렀다. 동네에서 가장 가을이 담뿍 담긴 아름다운 장소를 골라 돗자리를 깔고 기타를 쳤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차곡차곡 기억을 쌓았다.
내가 이토록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구나 느끼는 계기이기도 했다. 풍요로운 계절, 나를 가장 너그럽게 만드는 순간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가을을 만끽해야지?
차가 막히기 전에 아침 일찍 시내에 내려가 돼지고기 목살 두 근을 사 왔다. 이제 제법 고기 굽기에 고수가 된 남편이 불을 피우는 동안, 나는 쌈채소를 씻고 쌈장을 만들고 엄마가 준 파김치와 총각김치를 준비한다. 다른 반찬은 풍경이 다 할 것이니.
아이들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칼싸움을 하고 자전거를 타다가도 고기 냄새에 킁킁거리며 아빠 주위를 계속 맴돈다. 밖에서 굽는 고기는 시간이 필요해. 느긋하게 가을 풍경을 즐긴다.
평소엔 방치해 뒀던 나무 벤치에 식탁보를 펼치고 단출한 음식을 세팅한다. 웃고 떠들며 너 한 입, 나 한 입 먹다 보면 고기는 금세 감쪽같이 사라진다. 사랑은 곱절로 피어난다.
언제부턴가 많이 갖기 위해, 많이 성취하기 위해 살지 않게 되었다. 미래를 위해 살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 살게 되었다. 그런 가치에 대한 글을 끊임없이 쓰고 있다. 어떤 엄청난 철학을 가져서가 아니다. 나는 철학도 뭣도 없는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다만 살다 보니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돈이 있어야 가능한 삶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뿐이다. 돈이 아니라 시간이, 생산적이지 않은 것에 마음을 낼 여유가 있어야 누릴 수 있는 삶이다.
가을의 절정이 지나간다. 오리털 잠바를 껴입고 고기까지는 맛있게 먹었는데 도무지 차가운 맥주는 넘어가질 않는다. 이제 곧 겨울이 오겠다. 인터넷으로 날씨를 검색하지 않아도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온도로 계절의 바뀜을 느끼는 삶이 좋다.
마당에서 주워온 나무로 불을 피우고, 같은 사람의 영향을 받은 이의 책을 펼쳐본다. 물론 우리는 이들보다 훨씬 자본주의 안에서 안락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에 우열은 없다. 각자 자기의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명품 하나 없이 지불한 것이라고는 고깃값 33,000원으로 부러움을 샀을 내 글을 마무리한다. 이것이 진정한 가을의 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