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을 먼저 사는 이유
게으르지만 성실합니다.
서늘하다 못해 살을 베일 것처럼 바람이 얼굴을 바꾼다. 붉게 물들었던 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갑자기 변한 온도에 당황한 사람들이 외투를 부여잡고 종종걸음을 걷는다. 화려했던 한 때가 지고 무채색의 계절이 온다. 바로 지금, 12월이다.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뚝 떨어지면 자연스레 활동량도 준다. 계절과 함께 찾아오는 우울, 무력감, 피로들을 '송년'이라는 이름으로 먹고 마시며 떨쳐보려고 하지만 드문드문 발걸음이 멈출 때마다 올해 대체 뭘 했지 하는 자책이 밀려온다. "어휴, 또 나이를 먹네." 일 년의 반도 못 산 것 같은데 벌써 12월이라니.
언젠가부터 자책과 후회, 인위적인 웃음이 가득한 이 계절이 되면 나는 느슨하게 풀려있던 마음의 끈을 슬쩍 당긴다. 서른에 첫 아이를 낳고 셋째까지 쭉 임신, 출산, 육아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내 나이는 마흔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울 속 나는 어느새 팔자 주름이 깊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니야. 이렇게 마흔이 될 수 없어!' 시작은 그랬다. 39살이 되기 한 달 전, 좀 더 의미 있게 마지막 30대를 보내고 싶어서 나는 '한 달 먼저' 살기로 했다. 그렇게 벌써 3년 째다. 2022년 12월. 나는 이미 2023년을 살고 있다.
연초가 되면 우리는 항상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아침형 인간이 되고 말겠어!부터 다이어트, 영어 공부, 경제적 부자 되기 등등 높은 이상을 마음껏 쏟아낸다. 재밌는 것은 사람들은 대부분 큰 틀에서 비슷비슷한 계획을 세우고 쉬이 실패한다는 것이다. '역시 내가 그럼 그렇지.' 자포자기의 말이 절로 나온다. 12월이 되면 우울해지는 것 마냥 1월이 되어 한껏 고양된 마음은 그때뿐이다. 해가 바뀌면 뭔가 달라질 것 같지만, 매일을 사는 우리는 그리 다르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그저 달력이 한 장 넘어갔을 뿐이다.
30대의 마지막을 또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12월부터 몸만들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새벽 기상을 해보는 거야. 지금부터 운동을 해보자. 마음을 굳게 먹고 시작했지만 열정은 금세 시들고 며칠 못가 늦잠 자는 나를 발견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보너스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새해는 오지 않았고, 나에겐 시행착오할 시간이 남아있다. 충분하다. 아직 여유 있다. 내 몸은 지금 적응 중이니까. 그런 마음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 움직이게 했다. 작심삼일의 횟수가 반복될수록 나는 실패한 날보다 성공한 날이 많아졌다.
올해 여름부터 유독 마음이 가라앉았다. '성장'만 반복하는 삶에 권태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 성장은 집어치우고 나도 좀 놀고 싶은데?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쉬었다. 평소 대충 했던 집안 일도, 소홀했던 건강도, 무심했던 아이의 학교 일까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챙겼다. 나의 '성장'을 한다고 내팽개쳐 두었던 내 삶을 이루는 근간을 챙겼다. 지금보다 천천히 가더라도 오래가기 위해 내 삶을 더욱 성실하게 꾸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에너지가 차오르는 시기, 12월을 맞이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의 2023년은 이미 시작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따끈한 차를 마시고, 요가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
아이들이 일어날 시간이 되었으니 따끈한 아침밥을 챙겨주고 학교를 보내야겠다.
온통 무채색인 스산한 겨울엔 밤하늘의 별이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숨 죽어있던 마음의 별을 빛내기 딱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