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고, 고민하고, 멈춰라.
텅비워야 채울 수 있다.
구체적인 꿈을 꾸었다.
말하는 대로 살았다.
무엇이든 Yes로 답했다.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다.
꿈꾸는 사람.
꿈을 꿈으로 남기지 않고 쟁취하는 사람.
더 큰 꿈을 꾸는 사람.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우는 것처럼 그동안 할 수 없다고 여겼던 많은 일들을 하나씩 해냈다. 그러는 동안 자존감도 쌓였다. 내가 가는 길을 지지해주는 응원자도 늘었다. 성과도 좋았다. 더할 나위 없었다. 이렇게만 계속 나아가면 모든 것이 순탄할 것이라 믿었다.
몇 년 전,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21세기 북스)의 저자 한재우 작가님의 북 토크에 갔을 때 작가님께서 마이클 싱어의 <될 일은 된다>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내맡기기 실험'을 한 저자의 성공담이었다. 그때 그런 질문을 했었다. "그런데 작가님, 뭐든 Yes로 답한다는 기준이 뭔가요? 정말 모든 사람의 부탁을 Yes로 답하는 건가요? 정말 할 수 없거나 이상한 일이면 어떡해요?" 그때 작가님께서 뭐라고 답하셨던가. 어렴풋 이 일이 나에게 옳은지 아닌지는 느낌으로 알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본래 부끄러움이 많고 나서는 성격도 아니다. 세 번은 거절하는 한국인의 습성도 고스란히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예스는커녕 '아니에요, 못해요, 죄송해요' 3종 세트를 항상 입에 달고 살았다. 애만 키우다가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와 뭐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쯤 만난 작가님과의 대화가 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무조건'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어떤 일이 와도 예스로 답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돌아온 걸 보면. 그리고 실제로 그 뒤에 나는 그렇게 살았다. '거절'이란 단어가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여러 독서 모임에서 기타 연주를 해달라고 하면 부들부들 떨며 노래했다. 책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에도 귀를 기울였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눈 딱 감고 해냈다.
고민할 것 없이 Yes로 답하는 삶은 내 모든 것들을 달라지게 했다. 어느 순간 꿈을 꾸지 않아도 내가 답하는 대로 삶이 나를 끌고 여기에 데려 왔다.
이 망할 번아웃인지 만족감인지 정체 모를 감정을 만나기 전까지.
긍정이 이끄는 대로 내맡겨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이상했다.
'정말 내가 하는 게 맞나?'
'나는 이 일을 원하고 있나?'
'이거 정말 나다운 게 맞나?'
나는 '나비 날다 나날'이라는 브랜딩을 해나가고 있다. 나날은 자기만의 속도로 나답게 사는 삶의 여정을 말한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주인공 나비처럼. 그저 나다움을 지키며 사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희망이 되는 나비처럼.
내가 하는 일들이 내가 꿈꾸던 나비의 삶인가, 하는 지점에서 멈추고 말았다. 개인적인 성장과 돈은 이전보다 훨씬 나았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처음엔 몇만 원의 수익만 나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는데 몇 백씩도 벌게 됐으니.
그토록 '나답게' 살겠다고 외쳤는데 그 외침이 메아리처럼 공허해졌다. 너의 나다움은 대체 뭔데? 한 번 생긴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삶과 글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아쉽지만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았다. 하루만 SNS에 글을 올리지 않아도 사라지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들은 하지 않았다. 개수를 채우기 위한 기록도 하지 않았다. 쓰기 위한 쓰기를 하지 않았다. 이익을 위한 만남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들이 늘어났다.
텅 비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끝없이 의심하고 고민했다. 가까운 이들을 한없이 붙잡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너무 보잘것없는데 대체 여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무한반복의 한탄에도 늘 성심성의껏 답해주던 그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든다. 아마 혼자 고민했다면 나는 이 땅굴을 절대 다시 올라오지 못했을 텐데 그들의 격려와 따뜻한 응원이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했다.
이 시간을 겪으며 알았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내가 여태 맺은 귀한 사람들, 그리고 나를 믿는 마음이 이미 내 안에 가득하다는 것을. 텅 비운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눈앞의 문제에 몰입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지만 전전긍긍했을지 모른다. 이토록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한 발 떨어져 응원하고 있었음을 몰랐겠지.
멈추는 건 어렵다. 달리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 모른다. 이 멈춤이 내가 겨우 꾸려놓은 것들을 다 무너뜨릴까 걱정이 될지도 모른다. 요가를 하다 보면 자세가 뒤틀릴 때가 많다. 내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뒤틀린 채로 몸을 움직이다 다치기도 한다. 다시 중심을 맞춰 자세를 정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이었다. 내 중심을 맞추는 시간. 만약 내 삶에 자꾸 의심이 든다면 멈춤을 시도하기를 권한다. 불안하다면 가까운 이에게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느냐 묻고 대화를 하기 바란다. 뒤틀린 나를 알아챌 수 있는 건 어쩌면 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