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변명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려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재미있게 살 순 없을까?
도서관에서 보자마자 냉큼 빌려왔던 책의 제목이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재미있게 살 수 있다니! 그 책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아주 진지하고 간절한 소망을. '이제 그만 하자.'라고 마음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만났다. 좋아하는 일이 더 이상 좋아하는 일이 아니게 되어버린 순간을.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준 건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가수 아이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었더니 더 이상 즐길 수만은 없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다는 말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기타'라고 한다.
갓 돌 지난 아이를 보행기에 태워놓고 등대지기의 첫마디를 더듬더듬 뜯던 아주 초보 시절을 지나 웬만한 대중가요 정도는 연주하며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약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취미는 기타'라는 말 안에는 음악을 듣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기타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전부 포함되어 있다. 나는 틈만 나면 악보를 찾아보고 기타를 연습하고 노래를 얹어 영상을 찍곤 했다. 그 작업을 SNS에 올렸다.
비슷비슷한 피드 사이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는 엄마'의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조금 특별하게 각인되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빨리 SNS가 성장한 이유였다. 그러다 보니 '기타'는 어느새 단순히 취미의 영역만은 아니게 되었다. 내가 만들어가는 나날이라는 브랜딩의 핵심 소재이자, 메시지였다. 서툴지만 진심을 전하고 싶은 노력이었고, 부끄럽지만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간 용기였다.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공모전에서 당선된 글도, 새로운 플랫폼에서 강사로 활동하게 된 것도, 크고 작은 공연까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더 이상 기타를 '즐기지' 못했다. 취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인데 기타로 하는 일들이 자꾸 취미의 영역을 벗어났다. 시간에 비례해 기타 실력이 전혀 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언제까지 서투르다는 표현을 쓸 것인가. 그조차 민망해졌다. 혼자 신나서 흥얼거리던 나의 소중한 취미가 사라졌다.
기타와 비슷하게 시작한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나의 삶을, 경험으로 얻은 생각을 적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곪은 상처를 글로 꺼내놓았고 그 안에서 정화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 나와 나의 가족을 더 사랑하게 했다. 내가 만난 사람에 대한 기록은 그와 나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 줬다. 말주변이 없고 속내를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나에게 '글쓰기'라는 도구는 선물 같았다. 그저 썼을 뿐인데 내 삶은 이전과는 달라졌다. 그렇게 쉽게 써 내려갔던 글이 한 권씩 책이 되면서 그때에는 기뻤으나 나를 점점 옥죄어왔다. 엄청난 문장력이나 뛰어난 경험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어쩌자고, 어쩌자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한 거야?
좋아하는 일을 했다. 그것이 뭐가 될지도 모른 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계속 마음을 내어 왔다. 앞으로도 계속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겠구나 내심 기뻤다. 거기에 여러 가지 역할과 책임이 요구되었다. 이제 '좋은 마음'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게 되었다. 처음의 행복감을 가질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매번 '적당히'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두 번째 책에도 '할 수 있는 만큼, 애쓰지 않고'라고 썼겠나. 이번에도 그랬다. 할 수 있는 만큼 애쓰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이곳이 내 한계임을 알았다.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멈춤'을 선택했다. 나의 게으른 시간은 그런 시간이었다. 비워냄의 시간. 후회도 미련도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 대신에 그 외의 다른 것들로 채우는 시간이었다. 내가 그토록 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것 말고. 그 시간의 끝에 나는 하나를 알았다. 다시,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을.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편하게 놀고먹고 싶다는 변명은 아니었을까.
앞서 말한 스티브 잡스나 아이유나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행복감만으로는 마음을 다 할 수 없어서 고통이 수반된다. '한계'를 넘기 위한 맹렬한 노력이 필요하다. 꾸역꾸역 지속할 때 그래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느낄 때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된다. 노력이 사라지고 편안함이 지속되는 순간 좋아하는 일은 지루한 일이 되어버릴 테니까. 더 이상 설레지 않은 일이 되어버릴 테니까. 비워낸 곳에 차오른 에너지를 가지고 다시 한번 한계를 향해 몸을 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