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다하여 살아보고 싶어졌다.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

by 나날 곽진영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남형석 작가님의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에 푹 빠져 있었다. 춘천시 춘천로145번길 36 '첫서재' 스무 달의 기록.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작가님의 생각을 읽고 또 읽으면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흔들렸다. 콩닥콩닥 설렜기도 했고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이에게 무심코 만나자는(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연락을 하기도 했다.


지난여름 크게 탈이나 일주일을 몸져누워있는 동안 남편의 여름휴가가 끝났다. 병간호하느라 아무 데도 못 가고 집에만 있었던 아이들의 아우성에 못 이겨 겨우 발걸음을 뗀 곳이 춘천이었다. 감자밭 이미소 대표의 이야기가 꽤 인상적이어서 그곳을 구경할 요량이었다. 춘천 스카이워크를 걷고, 감자밭에서 아이들과 예쁜 사진도 찍었다. 어느 도시에 가든 그 도시의 재래시장을 꼭 들르는 취미가 있어 모를 땐 중앙시장이라며 들렀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랬는지 상점은 거의 문을 닫았고 명동 거리는 한산했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을 떼지 못하고 걷다가 육림고개까지 갔다.




옛 것과 지금의 것이 뒤섞인 묘한 동네의 매력에 빠져 한참을 그곳에서 아이들과 머물렀다. 얼마 전 친한 언니와 다시 춘천을 찾았을 때도 육림고개를 들렀다. 눈여겨보았던 카페에서 차를 마시기도 했다. 우연히 '첫서재'는 그곳에 있었다. 그걸 지금에서야 알았다는 것이 아쉬웠다. 어쩌면 첫서재가 문을 닫기 전 나는 그곳까지 발걸음이 닿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작가님이 왜 춘천에, 육림고개에 첫서재를 열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고즈넉하고 아늑한 마을.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전해지는 동네. 내가 그곳에 마음이 간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게 춘천에서 나는 잠시 삶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듬해 봄이 되면, 봄을 이름에 품은 단 하나뿐인 도시에 안겨 봄방학처럼 살기로. 그 사이 올해 봄은 훌쩍 지나가고 여름이 찾아왔다.



속도와 방향. 내가 남한산성으로 올라오며 매번 생각하고 생각했던 단어였다. 세상의 속도와 달라도 괜찮다, 남들이 가는 방향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나다운 속도와 방향. 그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님과 내가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멈춤'이 필요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멈췄고, 철없어 보이는 선택일지라도 선택했고, 그곳에서 작은 것부터 일궈간 시간. 어쩌면 엄청난 용기일 수도 혹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는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이 선택이 아니었다면 삶은 책이 될 수 있었을까. 내가 그 3년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숲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한 권의 기록을 한 것처럼 그는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라는 기록을 완성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멈춤의 시간을 보내는 태도가 달랐다. 나는 다른 사람을 크게 부러워하지 않는다. 시선이 나로부터 상대로 잘 옮겨지지 않는 탓이다. 그것은 나의 장점이기도 하고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춘천에서의 스무 달의 기록을 보는 내내 나는 질투했다. 첫서재의 풍경이 마치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묘사한 아름다운 문장을 질투했고, 스무 달의 시간을 매일 기록했을 성실함을 질투했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그의 따뜻한 시선을 질투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다 보니 얻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그렇다. 춘천살이를 하면서, 첫서재 문을 열면서 얻은 도드라진 수확이다. 서울서 직장 다닐 때는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정성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쌓았다. 나에게만 가족에게만 친구에게만 정성을 쏟기에도 시간이 늘 빠듯했다. 더 솔직해지자면 빠듯하다는 핑계 대기에 바빴다. 분주함을 계량할 수 있다면 실제 분주함보다 마음의 분주함이 두 배는 더 컸을 텐까. 그러나 여기서는 무엇도 빠듯하지 않다. 정성을 다할 범주를 정하고 울타리를 두를 필요도, 그 중심에 내가 있을 필요도 없다.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 p126)


나도 꽤 느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성정이기도 했고 모든 것이 느린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마음만은 늘 분주했다.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늘 조급했다.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하나의 물줄기는 여러 갈래로 퍼져 도무지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에서 나를 뒤흔들었던 한 단어는 '정성'이었다. 쓸모 '있는'일에만 선택적으로 설레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알고 있다. 나는 내 방식대로 마음을 다했고 여태 그것은 최선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도 최선일 리는 없다. 책을 덮으며 흩어진 물줄기가 바다를 향해 가는 길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진정한 느림을 찾고 싶어졌다. 시시하고 쓸데없는 것들에게, 작고 소중한 것들에게, 별 이득 될 것 없는 무언가에게 정성을 다하며. 진짜 바라던 삶의 모습이 뚜렷하게 그려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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