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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Feb 23. 2021

필사를 왜 하나요?

필사의 목적



책을 내고 가장 피하고 싶었던 질문이 어떤 질문이었는 줄 아시나요?바로 어떻게 그렇게 긴 글을 쓰셨어요? 방법이 뭔가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대답을 할 수 없어서 싫었습니다. 그 방법을 알지 못하면서 책을 어떻게 썼냐고 반문을 할까 봐 그 질문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필 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쓴 건지, 보는 사람마다 그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쓰다 보니 그냥 써지던데요,라고 말하면 재수가 없으려나요.


돌이켜보면 마음을 먹고 글쓰기를 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블로그에 잠깐씩 쓰던 글이 전부니까요.

그런 제가 유일하게 끄적이는 시간이 독서를 할 때였습니다. 저는 눈으로만 책을 읽지 못합니다. 눈으로만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 줄도 제대로 안 읽혀서, 꼭 펜을 들고 책을 읽습니다. 줄을 그어가면서, 형광펜을 칠해가면서.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일도, 책을 중고로 파는 일도 할 수가 없어요.


책을 읽을 때 펜을 들고 있으면 좋은 점은, 작가와 호흡하면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감 가는 문장, 깨달음을 주는 문장,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장 등에 가차 없이 줄을 그어가며 내 생각을 옆에 적어놓습니다. ㅋㅋㅋ 웃음도 붙여놓고, 신세한탄도 하고 말이죠. 제 책을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해요. 생각해보니 그랬습니다. 이전에 제가 글을 쓰는 유일한 때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을 때였어요. 양심은 있어서, 멀쩡한 책에 낙서를 하는 것은 좀 아까우니 보이는 종이에 끄적끄적 좋은 문장들을 적고 내 생각을 적으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글을 쓰세요?"라는 질문에 어느 날 문득 떠오른 답이, '필사를 하면서 씁니다.' 였어요. 글쓰기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제가 습관처럼 꾸준히 끄적이면서 써왔던 글들이 어쩌면 제가 읽고 쓰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보면 제 책도 <월든>의 이 구절을 읽다가 시작되었거든요.


나는 누군가가 나 같은 생활방식을 택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가 그 생활방식을 완전히 익히기도 전에 내가 다른 생활방식을 찾아낼지도 모르고, 나는 세상 사람들이 되도록 다양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각자가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이웃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생활방식을 찾아내어 그 길을 따라가기를 바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중)


다양한 삶의 방식이 허용되는 사회, 나와 다른 사람의 방식을 비난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던 부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물꼬가 트인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필사의 장점을 나열한 영상들이 많더라고요. 글의 구조를 익히기 위해, 좋은 표현을 따라 쓰기 위해, 어휘력을 기르기 위해. 여러 가지 필사의 유익한 점이 많이 나왔습니다. 좋은 문장가들이 습작을 할 때 필사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책에 밑줄을 긋고, 종이에 적는 이유는 그 문장이 그냥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였고, 기억해야지 하는 다짐이었고, 내 삶을 변화시킬 한 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장 밑에 내 생각을 쓰다 보면 어느새 독서는 뒷전이고 나의 이야기로 종이를 빼곡히 채웠습니다. 우물쭈물 제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쓸 용기도 없는 부끄럼 많은 여자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작가에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바로 제 생각이라고요." 하면서 꾹꾹 눌러왔던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었던 시간. 필사가 목적이 아니라 내 이야기가 목적이었던 시간이었고, 하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 가득한 사람에게 그것은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정리라 함은 버리는 것이라는 공식이 있는 사람인지라 그 수많은 A4용지들이, 아이들의 스케치북들이 사라진 것이 아쉽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읽고 쓸 사람이니 그 기록들의 사라짐을 마냥 아쉬워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 글들이 어딘가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새겨져서 조금씩 나라는 사람을 변화시켰을 테니까요. 그런 이유로 저는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혹은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손으로 하는 명상인 필사를 권하고 싶어요.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이야기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때가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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