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로 시작하는 글쓰기
절반의 삶은 도착했으나 결코 도착하지 못한 것이고
일했지만 결코 일하지 않은 것이고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그대는 그대 자신이 아니다.
그대 자신을 결코 안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대의 동반자가 아니다.
이 시는 류시화 시인의 <시로 납치하다>에 실린 칼릴 지브란의 '절반의 생'이라는 시다. 이 시에 류시화 시인은 이런 시선을 담았다. '어중간하게 살지 말고, 미온적으로 사랑하지 말며, 방관자 적 태도로 행동하지 말라.'
요즘 나에게 계속 말을 건네는 단어는 '용기'이다. 무언가를 겁내지 않는 씩씩한 마음. 나는 대체로 좋은 사람이고 싶다. 얼굴을 붉히기보다는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택한다. 그렇게 쭉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리 변하진 않을 거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올 한 해는 '용기'를 내겠다는 마음을 먹었더랬다. 무엇을 할 용기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용기 말이다. 내가 나인채로 존재하지 못하게 내버려 두는 상황에서 벗어날 용기, 나와 생각이 다른 이의 말로부터 멀어질 용기, 어정쩡한 상태를 끊어낼 용기. 이런 용기 말이다. 내가 이런 마음에 확신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이 시 덕분이었다.
일 년 동안 필사 모임을 리딩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필사 모임은 단순히 고전이나 잘 쓰인 책을 필사하며 문장 연습을 하는 모임이 아니다.
작년 겨울, 마음이 괴로웠던 날 책을 읽다가 눈물을 쏟아냈다. 박완서 작가님의 <모래알 만한 진실이라도>라는 책이었다. 그 책의 일부를 읽다가 쏟아지는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글을 썼다. 마음과 감정을 잔뜩 쏟아 내어놓고 나니 거짓말처럼 그 감정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졌다. 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마음이 박완서 작가님이 써 놓은 한 줄의 위로에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던 경험. 나는 이 경험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감정을 말랑하게 해 줄 책을 선정하고, 책을 읽다가 마음을 '똑똑' 두드리는 문장이 나타나면 필사하고, 그 밑에 나의 이야기를 꺼내어놓는다. 그러면 그 마음에 공감하는 한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 이 짧고 사소한 시간은 나를, 그리고 필사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충만하게 했다.
2022년의 첫 필사 책이 류시화 시인의 <시로 납치하다>였다. 매일 시를 읽고 필사를 하며 올해 내 마음에 품고 갈 시로 '절반의 생'을 선택하면서 나는 '용기'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렸다. 용기는 '온전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라고. 온전하게 마음을 내어놓고, 온전하게 지지하고,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어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온전하지 못할 마음이면서 온전한 척하지 않기. 상대와 나를 서로의 이방인이 되지 않도록 그런 관계는 끝맺음을 하는 일이었다.
회피와 침묵으로 일관하던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필사와 함께 시작한 글쓰기의 힘이었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공개하는 글이 아닌 오롯이 내 노트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 덕분이었다. 일 년 동안 적어온 내 마음속 찌꺼기 같은 이야기들은 조금씩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책 속의 작가들로부터 위로받고, 그들에게 투덜거리며 때로는 꺼이꺼이 울며 썼던 글들은 하나같이 내 자양분이 되었다.
그대는 할 수 있다.
그대는 절반의 존재가 아니므로.
그대는 절반의 삶이 아닌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온전한 사람이므로.
시인의 마지막 문단이 내 등을 힘껏 밀어준다. 이제 절반의 마음으로 사는 삶은 그만해. 너는 절반의 존재가 아니야. 너는 이제 너만의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해. 시인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이제 온전한 삶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믿는다. 온전한 삶을 산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거라고. 자유롭게, 온 마음이 담긴 글을 써낼 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