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날 작가 Sep 03. 2022

방구석에서 경험을 삽니다.

내가 책 읽는 이유

변덕스럽고 즉흥적인, 전형적인 P형 인간이지만 40년 동안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여행보다 집에 머무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본 투 비 집순이. 얼마나 집을 좋아하면 집에다 책방을 차렸을까.


어릴 때부터 나는 홀로 빈집을 지켰다. 고요한 집에 혼자 있어도 무섭거나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혼자 인형놀이를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올드 팝을 들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매일 같이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하기 바빴다.

그러다 집 앞에 생긴 책 대여점을 만나버렸다. 매일같이 대여점 앞을 서성거리다가 아저씨가 문을 열자마자 책 2권을 빌려 나왔다. 처음엔 판타지 소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퇴마록을 시작으로 왜란 종결자, 파이로 매니악, 묵향, 드래곤라자 등등 셀 수 없는 판타지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FM으로 학교-집을 오가는 중학생 여자아이에게 판타지 소설은 미지의 세계이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판타지 소설에 흥미를 잃을 무렵 한창 사춘기 소녀의 관심사는 '연애'였다. 물어볼 것도 없이 로맨스 소설을 산처럼 쌓아 놓고 읽기 시작했다. 연애 경험이 전무한 아이가 글로 읽는 연애는 분명 한계가 있었지만 그만큼 달콤했다. 내가 그토록 연애를 잘했던 이유는 아마 로맨스 소설의 공이 크지 않았을까.


"작가님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셨어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셨나요?"

이제 겨우 책 2권을 쓴 사람인데 그것도 작가라고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아니요. 저는 글 쓰는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책도... 음 저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어요"

거짓말이다. 빠알간 거짓말이다. 나는 책 대여점에서 내 나이에 대여 가능한 모든 종류의 판타지 소설과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 다만 이런 걸 읽어놓고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서, 적어도 오만과 편견이나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은 읽어야 문학소녀의 대열에 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니라고 말했을 뿐이다.


20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대학 등록금을 제외한 모든 생활비는 내가 감당해야 했다. 친구들이 학교 앞 쇼핑의 거리를 활보할 때 나는 과외 시간을 늦을까 봐 서울 곳곳을 뛰어다녔다. 직장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퇴근 후 한 잔 하자며 직장 동료들이 밤거리를 헤맬 때도 나는 꾸벅꾸벅 졸며 과외하는 아이를 만나러 가야 했다. 그때는 시간도 체력도 있었지만 돈이 없었다. 절대적으로 돈이 부족했다.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서 일본어 책을, 성우가 되고 싶어서 스피치 책을,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서 유학 설명서 책을 집었다. 방구석에서 꾸역꾸역 결핍을 채웠다.

엄마가 된 지금도 그때보다는 여유롭지만 마찬가지다. 여전히 나는 책을 읽는다. 아이가 어릴 땐 누구 하나 주변에 도와줄 이가 없어서 그저 육아서에서 알려주는 방법으로 내 아이를 마루타 삼아 시험했다. 아이가 조금 크고 난 뒤에는 공허한 내 마음을 붙잡으려고 심리학 책이나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비싼 강의에 돈을 지불할 만한 깜냥이 없으니 그들이 쓴 책을 사서 읽는다.


누군가는 책만 읽는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책이 유일했다. 책이 알려주는 세상이 전부였고 그 세상은 나의 많은 것을 달라지게 했다. 나는 늘 방구석에 있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장르 구별 없이 나에게 지금 필요한 책들을 쏙쏙 골라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책방을 연 이유도 마음껏 책을 사서 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물어보세요. 여러분에게 필요한 책을 발견해 드릴게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취향입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