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날 작가 Mar 11. 2023

마음이 흘러넘쳐 견딜 수 없어 썼다.

코로나로 세상이 완전히 멈추었던 시간, 나는 오히려 조금씩 꿈틀 다.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멈춰있던 사람의 몸부림이었다.


매일 새벽, 컴퓨터 앞에 앉아 길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평생 맨 정신으로 동트기 전 하늘을 본 날이 없었는데 그토록 눈이 떠지지 않았던 새벽이 짧게만 느껴지다니.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일어나려고 애를 썼던 날들이었다. 그래야 아이들이 깨기 전에 한 글자라도 더 쓸 수 있었으니까.


오리털 파카를 입고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냉기 가득한 거실 테이블에 앉았다. 모니터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막연하게 쳐다보다 신중하게 키보드 자판 하나하나를 눌렀다. 어느 순간 내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손가락이 저절로 다다다다 움직였다. 과거의 어느 때로 타입슬립해 그때의 나에게, 누군가에게 폭발하 듯 감정을 쏟아부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A4 두 장이 꽉 찼다.


어떤 날은 너무 독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떤 날은 쓰레기 같다고 느껴져 삭제하기도 했다. 그렇게 볼품없는 날 것의 단어들이 후드득 쏟아져 어느 날 돌아보니 100장이 넘는 글이 쌓였다.



이미 차다 못해 흘러넘치는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썼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런 것이었다. 더 이상 품고 있다가는 독이 될 마음의 배출이었다. 맹독이 빠져나간 자리가 쓰라려서 울었을지라도.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도 말걸. 여태 잘만 외면하고 살았던 감정이었는데 들추지 말걸. 비어버린 헛헛함에 후회도 많이 했다.


지금 와서 보니 그게 시작이었다. 내 인생에 하나도 보탬이 안 되는 찌꺼기 같은 감정을 거둬내 나니  안에 감춰진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을,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 남편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나 자신을 마주했다.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나를 향한 투박한 마음들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글을 쓰고 난 후, 나는 나와 나의 주변인들과 화해했다. 비로소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나를 세상에 내어놓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 글쓰기라, 아직 그것밖에 알지 못해서, 그래서 계속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의 취향은 '책'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