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받고 며칠 내내 답장을 해야 하는데, 라는 마음에 초조했어.'그렇게 부담 갖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부담이 아니라 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어. 어린 시절 책 속에 파묻혀 있는 J가 자꾸 떠올라서, 전 생애를 거쳐 세계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는 당당한 포부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서.
글을 읽으면서 또 생각했지. 우리가 이렇게 달라서.
또 다르다고 말할 수 있어서 나는 이 편지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약간 초조해졌던 마음이 생각나. 때로는 그 다름이 강요나 요구로 느껴졌을 때 이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던 기억도 떠오르고.이제는 알아. 내가 이 관계에 왜 그토록 피로감을 느꼈었는지.
누가 그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우리가 비슷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약간 운명론자잖아.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한 다름에 너무 당황했던 거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묘하게 부딪치는 지점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할까를 고민하다 보니 그토록 내가 힘들었던 거였어.
관계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쏟는 걸 힘들어하는 내가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해 가르쳐준 J 덕분이었어.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를 J는 꼰대라고 하지만, 나에게 그 여우는 내가 모르는 세상을 보여준 현자였거든. 물론 읽는 내내 '여우야, 피곤하다.'라고 계속되니이긴 했지만 말이야. 하하.
어느 순간부터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재밌어졌어. 같은 책을 읽고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도, 너무 사소한 지점에서 쨍하고 부딪치는 것도 나한테는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어. 그 다름에 대해서 서로 열변을 토할 때마다 나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어.번번이 내가 말하잖아.
"내가 이런 얘기를 누구랑 하겠어!!!!"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다른 의견에 그거 아니야, 혹은 틀렸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 그저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발을 동동구르고 싶을 만큼신나는 순간이었지.
이 편지를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봤어. '어떻게 J 하고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그건 관계에 대한 신뢰, 온전히 보내주는 지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같은 것들 때문이었겠지? 생각의 차이일 뿐 서로에 대한 부정이 아님을 배운 거지.그러니 공감을 못했다는 이야기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야. 나에게 J는 공감의 정석인데 그 공감을 책을 통해 배웠다니 더 놀랍잖아?
어쩌면 이게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야. 경험은 적고 호기심은 많은 내가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행위가 독서였거든. 뭐든 알고 싶고,궁금한 것도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나는 환경적으로 제약이 많았으니까. 그걸 해소하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 2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사람의 세계를, 생각을 통째로 얻을 수 있다니. 이것만큼 가성비 좋은 것이 또 어디 있겠어?
나는 늘 돈이 없었으니까. 돈이 풍족한 때가 한 번도 없었던 내가 책을 찾았던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지. 책은 그런 내 결핍을 채워주는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절인 요즘, 책을 흥청망청 살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가장 큰 기쁨이야. 여전히 책 이외의 소비에는 별 관심이 없고 말이야. 소비하면 또 할 얘기가 가득하지. 다음엔 소비에 대한 책 이야기를 해볼까?
"P는 이런 책을 좋아하나 봐."
누군가 나의 책 취향을 넌지시 예상하지만사실 나는 아주 다양한 책을 읽어. 책에 있어서 만큼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끌리는 대로.예전에 난 취향도 깊이도 없다고 나 자신을 비하했었는데 사실 난 그만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는 걸 알았어.
나는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어. 나는 읽고 생각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실험해보고 싶어.
나의 독서는 실천 혹은 실행의 과정이 빠질 수 없고,그래서 독서는 나에게 단순한 취미생활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self-inprovement. 진짜 자기 계발인 거지.
그러고 보니 내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환기시키고 질문해주는 건 책과 J의 공통점이네. 그래서 좋아하나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