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소비의 즐거움에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다니, 읽는 내내 나도 함박웃음이 지어졌어. 왠지 J의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거든. 타닥타닥 리듬에 맞춰 얼마나 신나게 썼을지. 좋아하는 마음, 좋아하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은 그런 것 같아. 그래서 그 마음을 나와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 그렇지 않았을 때의 아쉬움이 절절히 느껴지더라고. 그런 J의 마음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할게.
J의 마지막 질문에 먼저 답해볼까? 돈을 가장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요즘, 책 이외의 기쁜 소비에 대한 질문.
난 마음을 돈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가 기뻐. 좀 삭막한가. '카카오톡 선물하기'라는 기능을 고민 없이 쓸 수 있을 때가 기뻐. 그렇게 긴 말과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누군가에게 성의를 표시할 수 있는 시간 말이야. 내 20대는 늘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어. 언니, 오빠들이 있었고 어른들이 있었어. 가난했던 시절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못한 시절의 부끄러움이 있어. 그때의 결핍을 지금 채우고 있는 건가 싶을 때도 있고.
나는 정말 다른 남자와 결혼했어. 서울깍쟁이에게 이 사람은 연구 대상이면서 닮고 싶은 사람이었지. 매일 같이 말하는 월든과 조화로운 삶을 내가 읽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 "대체 그게 뭔데!" 하면서 책을 펼치고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지.
단순한 생활.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남.
무엇이든지 쓸모 있는 일을 할 기회.
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갈 기회.
(조화로운 삶 p18)
내 머리를 치고 간 문장은 그동안 내가 살던 삶에 대한 이야기였어. 내 20대는 그랬어. 복잡했고, 늘 긴장 속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그렸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했고, 나하나 살기 바빠 남을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삶이었어.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고, 나만 이렇게 애쓰고 사는 줄 알았어. 학벌과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했고, 그래서 나 또한 눈을 낮추지 못하고 대기업이 아니면 전문직 자격증이라도 따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어. 뭐든 성과로 증명하며 살아야 했던 내가 만약 그 모습 그대로 살았다면 지금 J가 알고 있는 나는 없었겠지. 그때 내가 얼마나 온몸에 힘을 주고 살았는지, 항상 두통과 가위눌림을 달고 살았고, 구내염은 사라지지 않았어.
남편에게 이직을 하라고 했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삶을 인정하게 되었어. 내 아이도 이런 시달림 속에 살겠구나 생각하니 암담했고 그리고 그런 삶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 그런데 그게 다짐만으로는 되질 않더라고. 삶은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니까. 단 며칠하고 끝날 일이라면 그래, 결심했어!로 가능하지만 내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속박되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흔히들 말하는 경제적 자유가 난 뭔지 잘 모르겠어. 돈이 얼마큼 있으면 자유로운 걸까? 일을 안 하면서 매달 꽂히는 월세가 있으면 정말 자유로워지는 걸까? 남편과 나는 그 답을 소로우와 니어링 부부의 삶에서 찾았어. 무엇에 속박되지 않고 사는 게 먼저라고. 그리고 그걸 삶으로 체험했던 시간이 있었지. 쓸 수 있는 돈이 없고, 이 세상 가장 밑바닥인 것 같은 하수처리장에 있을 때 나는 그 즐거움을 알게 된 거야. 돈이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 말이지.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넌 이미 투자해 놓은 게 있으니 그럴 수 있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것도 맞는 말이야. 난 뒷배가 든든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이미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 내가 생각하는 경제적 자유는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는 마음'이거든. 남편이 벌어오는 300도 안 되는 돈으로 충분히 누리고 살 수 있다고. 그러니 돈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절약하자, 미니멀 라이프 하자 같은 말들이 나에겐 조금 공허한 말들로 들리는 이유이기도 해. 절약이란 것은 함부로 쓰지 않고 꼭 필요한 데에만 써서 아낌이란 뜻인데, 필요한 데만 쓰면 굳이 두 주먹 꽉 지고 만원으로 살아야지 할 필요가 있나. 내 생각은 그래. 그렇게 살다 보면 미니멀 라이프는 자연스럽게 되는 거니까. 나에게 '소비'란 필요한 것을 사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절약이나 환경 보호 같은 커다란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쓸 만큼 쓰며 사는 소시민의 이야기일 뿐이지.
예를 들면, 그런 거지. J가 말한 우리 집에 걸려있는 시폰 커튼. 꽤 비싼 돈을 주고 동대문에서 발품을 팔아 샀지. 커튼은 필요한 거니까. 그리고 8년째 우리 집의 예쁨 모먼트를 만들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이 좋은 거지 커튼에 비친 예쁜 순간이 좋은 건 아니거든. 글을 읽으면서 내가 왜 J한테 때때로 단호해지는지 깨달았는데, 그것 봐 너도 그렇잖아.라고 하는 순간인 것 같아. 아, J는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할 때 너도 그러면서!라고 얘기하면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하하.
나뭇잎 책방을 시작하면서 나는 디퓨져도 사고 페인트 칠도하고 책장도 사고 앞으로도 여러 가지를 또 사야 하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중인 거야. 필요하니까. 우리 가족만 사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를 초대해야 하는 곳이니까. 작년에 내가 번 돈을 올해 투자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왔다. '자발적인 빈곤'이라는 이름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인간 생활을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농업, 상업, 문학, 예술을 막론하고 불필요한 삶의 열매는 사치일 뿐이다. (월든 p.32)
월든의 소로우의 말이 내가 지향하는 곳이야. 물론 나는 이렇게 살지 못하지. 그렇지만 내 삶의 태도나 방식이 그렇게 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애쓰고 다짐해. 그런 나에게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은 유쾌하고 즐거운 에세이는 맞지만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는 다를 뿐이야. 그 차이를 인정한다면 우리의 대화가 조금 편안해지지 않을까?
불안하지 않으려고 플랜 B를 준비하는 J를 나는 공감해. 그렇게 삶의 균형을 맞춰가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기쁨의 종류가 다를 뿐 그런 작은 기쁨들이 일상을 만든다는 걸 알고, 그 기쁨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며 나아가고 있음을 서로 알기에 우리는 오늘도 서로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거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