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부족하고, 밀어붙이는 힘도 부족하다. 에너지가 금방 소진되고, 오래 혼자 쉬어야 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나는 전형적인 내향인이다.
작년 이맘때 즈음 집 근처 사주 카페에 갔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인데 굳이 제 발로 그곳을 찾았던 이유가 있었다. 성과가 생겨날수록 가라앉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동굴로 숨고 싶었다.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고, 온 힘을 쏟아붓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금방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이 들었다. 그럼 과감하게 그만두면 될 텐데 그러기엔 호기심도 욕심도 많았다. 도대체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으니 결국 거기까지 갔던 거다. 내가 태어난 날과 시간으로 종이를 빼곡히 채우던 그녀는 말했다.
"진영 씨는 사주에 불이 하나도 없어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란 말이죠?"
나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거야? 그 한 마디에 갑자기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난 왜 이렇게 미적지근할까. 조금만 무리하면 왜 병이 날까. 그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는 순간, 그녀는 덧붙였다.
"진영 씨는 나무인데 대목은 아니고 들풀 같은 작은 나무예요. 그래서 혼자 쭉쭉 뻗어가기보다는 주변에 사람들을 두는 게 좋아요. 서로 어우러져 가며 살면 좋을 거예요."
답답한 마음에 찾은 카페에서 알 수 없는 위로를 느꼈다. 그녀의 말이 진실이건 아니건, 사주를 믿건 안 믿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고민했던 지점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그건 인정이었다. 나는 얼마쯤 열등하고 어정쩡한 사람이라는 것. 뜨거움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조금 가벼워졌다.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나를 보채거나 다그치지는 말자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내 한정된 에너지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좀 더 깊이 고민해보자 했다. 사실은 알고 있었던 사실임에도 굳이 누군가의 말에 의지하고 싶었던 나의 나약함까지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얼마 전 집에 책방을 열었다. 3개월 동안 매일 아침 일어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청소를 하고 손님맞이할 준비를 했다. 시작할 때 가장 큰 걱정은 아무래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였다. 단순히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니라 공간을 공유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초대' 콘셉트의 책방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불특정 한 사람을 만나 대화 나누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집을 오픈해서?'
걱정은 기우였다. 나는 이 일을 꽤 사랑했다. 책방에 올 때 사람들은 저마다 고민이나 문젯거리들을 가지고 온다. 아무 생각 없이 온 이도 결국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곳이 심리나 치유를 콘셉트로 하는 곳이 아니었으므로 그들도 그런 기대를 하고 오지는 않았을 테다. 아마 숲 속에 있는 가정 책방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온도가 그이들을 무장해제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책방에서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 일이었다. 어떤 특별한 해결책을 주거나 조언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곳은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그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일 정도만 할 뿐이었다. 가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오르는 문장을 들려주거나 책을 추천해 주는 일들을 하기도 했지만 그조차 의도하고 하는 일은 아니었다. 책과 함께 있는 공간이었으니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을 뿐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나는 어렴풋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경청하는 일, 휴지를 건네는 일, 등 한 번 쓸어주는 일처럼 적극적이지도, 열정적이지도 않지만 마음을 뜨끈하게 데워주는 이런 일들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혹시 나에게는 불 대신 빛이 있을지. 불을 지를 수는 없지만 당신을 환하게 비출 수는 있을지. 은은하게 나의 사랑을 연명해 나갈 수도 있을지. 벅찬 여름을 지나며, 그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얼마 전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을 필사하다가 이 문장을 만났다. 그렇구나. 뜨겁지는 않아도 환하게 비추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가까이에서 불을 지를 수는 없어도 멀리서 비추는 빛이 되어야지. 설사 그 빛이 내가 기대한 만큼 환하지 않더라도 어떠랴. 그대로도 괜찮다.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