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이 꿈꾸는 공동체에 대해서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만 해도 주변 친구들이 하나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뱃속에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두려웠던 나는 틈틈이 육아서를 읽으며 곧 만날 아이에 대한 꿈을 그렸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어느 책에서 본 말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외동딸이라 조금 외로웠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막연하게 '공동체'에 대한 꿈을 꿨다. 그리고 그때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 우리는 세 아이와 함께 작은 교육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전교생이 100명 남짓한 작은 학교다. 마을이 크지도 않아 산기슭을 따라 1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학부모들은 매 달 한 번 아이들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반모임을 열고, 그 사이사이 동아리 모임을 하며 친목을 쌓는다. 학교에서는 종종 학부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때마다 부모들은 '마음쌤'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함께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을 내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이곳 사람들은 적어도 내 아이와 같은 학년 친구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요즘 그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까지 대략 알만큼 가깝고 친밀한 사이다. 우리 집 세 아이는 이런 마을 어른들의 보살핌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나다. 내가 기질적으로 '거리 두기'를 디폴트로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처음엔 그저 '적응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자주 만나고 부대낄수록 가까워진다는 마을 언니들의 부름에 갓난쟁이를 데리고 온 동네를 다녔다. 어느 날은 윗마을 언니 집 마당에서 기타를 치며 고기를 구웠고, 어느 날은 아랫마을 언니네서 바느질을 하며 라면을 먹었다. 낯선 어린 엄마를 품어주는 푸근한 언니들 덕분에 어려운 산속 생활도 차츰 적응해갔다. 반면에 혼자 있는 시간이 극도로 줄었다. 집에서 책 한 줄 읽기도 힘들어졌다.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꿈꿔온 이상과는 달랐다. 나는 '공동체'를 꿈꾸면서 '공동체와 어울리는 사람'은 꿈꾸지 않았던 거다.
혼자는 외롭지만 여럿은 피곤하고,
관계는 힘들지만 사람이 싫지는 않고,
말수는 적어도 대화는 좋아하고,
살갑게 대할 뿐 연락처는 몰라도 그만이고,
나가기 싫다가도 막상 나가면 신나고,
겉으론 시크하지만 속으론 애정을 갈구하고…….
피터 홀린스의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라는 책 소개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니라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이상은 언제나 무리의 중심에서 활발하고 센스 넘치는 사람이고 싶으나 현실은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말수가 적어지고 눈웃음만 간신히 지을 뿐이다. 그마저도 버거워서 자주 뒷걸음질 치는 내가 때로는 답답하다.
코로나19는 어쩌면 그런 나에게 작은 숨통을 틔어주는 시간이었다. 각종 모임이 사라졌다. 중요하지 않은 일정은 전부 취소됐다. Zoom이라는 온라인 화상회의 툴은 집에서도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줬다. 서로 이야기를 하려고 떠들썩하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순서를 정해 이야기를 했다. 불편한 자리를 견디느라 어색한 웃음을 짓지 않아도 카메라 화면을 보며 방긋방긋 웃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나 같은 사람에겐 이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피치 못하게 떨어져 있다가 어쩌다 한 번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가 팬데믹 기간에 책을 쓰고 SNS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런 성격의 긍정적 작용이었을 거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롭고 싶지 않은 마음을 '온라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연결될 수 있어서.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나는 부쩍 나를 탐구하고 "관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완전한 내향성 또는 외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정신병원에서나 볼 수 있다!’ 이 말은 나에게 꽤나 희망적이다. 내가 늘 회피만 하는 건 아니다. 나도 언제든 모드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