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썬셋,중년의 썬라이즈

내일도 해가 뜬다는 것

by 빛작

6년 동안의 직업은 과학강사였다. 그런데 올해 봄부터 과학강사 일이 끊겼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되고부터였다. 물화생지를 가르쳤던 학원강사의 경험을 살려 방과 후 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지 막 1년을 채울 무렵이었다. 이 때는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인원이 모집되면 수업만 하고 오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었다. 선배 방과 후 강사들은 길게는 15년 이상을 한 우물만 파 왔었기 때문에 이 그라운드의 특성과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2월에 또 면접을 봐야 된다니까"

"해마다 같은 서류를 챙기려니까 너무 귀찮아"


가짓수 많은 지원서류를 새 학기 때마다 제출해야 하는 것이 제일 번거롭다고 했다. 나름대로 경력을 쌓을 만큼 쌓았다고 생각하고 지원을 했단다. 그런데 인원 채우기식으로 '면접 들러리'에만 그치고 불합격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도 좀 그렇다고 했다. 또, 수업 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학교나 센터로 직접 이동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강사들이나 시작하려고 고민하는 준비된 강사들은 생각이 달랐다. 아니, 선배 방과 후 강사들도 초심은 이러이러했을 것이다.


단연 매일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아주 우수한 매리트로 꼽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수업시간이 오전, 오후 중 보통 길어야 세 시간 정도이니 체력 방전의 염려가 적었다. 간단히 설명을 덧붙이자면, 강사마다 수업을 맡고 있는 학교 개수에 따라 일주일에 몇 회의 일을 하는가가 달라졌다. 한 학교와만 계약을 했다면 수업일수는 주 1회가 되었다. 주 2회라면 월 수입이 딱 그만큼이었다. 많은 직업들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과 같았다. 사회생활과 사람 관계의 그동안의 경험상 매일 출근하는 것이 적성에 맞다고 하는 강사들도 있었다.


9 to 6 근무시간과는 다른 패턴이 나름대로는 적응과 수혜의 기회로 느껴지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수업 이외의 시간은 수업 준비를 여유 있게 할 수 있어서였다. 또 집안 소사를 챙기거나 친구를 만날 수도 있었다.


"엄마... 은행 들렀다가 수업 갔다 올게"

"수업 끝나고 저녁 같이 먹자~"


시간 활용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일은 직업을 갖고 일도 하고 엄마로서 아이를 챙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인 생활 및 여가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방과 후 강사=프리랜서'라는 등식이 맞아떨어지는 큰 특징이자 장점이 있기 때문인 듯했다. 나에게도 맞춤이었다.


그동안 초중고 학생들과 함께 하며 작년에는 드디어 방과 후 강사라는 일을 하는구나라는 설렘을 가졌었다. 다짐의 시간도 잠시, 1월의 방학특강을 마친 후로는 한 개의 일거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새 학기에 맞춰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만 우리들에게도 2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지원할 학교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채용공고의 조건에 맞게 준비를 해야 했다. 합격의 필수요건에 걸맞게 적어내야 하니 나 또한 창작의 고통?을 느껴야 했다. 네 군데의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다섯 시간 초집중하여 써 내려갔다. 한 곳은 같은 소속의 베테랑 강사가 입지를 잘 다져놓은 곳이라 반갑기도 했다. 네 군데 모두 면접을 보는 내내 대답이 술술 나왔고 최소의 긴장감으로 임했다. 뿌듯했고 능력자로서 인정을 받아 합격의 히든카드임을 느낄 정도였다.


. 그 기쁨의 효력은 한 달...


각 학교에서는 교육청과 학부모님의 의견을 수렴하고 발산해내느라 바빠졌다. 바이러스 확진자가 늘어날수록 언제부터 학생들이 등교를 할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등교의 시점이 불확실해지자, 강좌도 그에 따라 개설이 미루어졌다.


늘어지는 집콕 생활이 3개월에 접어들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워크넷에서 뭐라도 찾아보고 누구라도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고민이 생기니까 불면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친한 동료가 링크를 보내주었다. 국민 청원으로 방과 후 강사의 고충과 제도 지원이 시급하다는 내용이었다. 허겁지겁 읽어 내려갔고 읽은 즉시 나도 여러 동료들에게 퍼 날랐다.

15년 20년 한 길만 걸어온 강사들의 심정이 마치 수혈을 필요로 하는 헌혈차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답답하고 절실하고 우울하기만 했을까...

아마 그런 느낌이었을 것 같았다.


점점 취침시간이 늦어졌다. 일정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피곤함을 잊으며 낮 시간을 보냈던 날들이 파노라마로 스쳐갔다.

이제 막 제2의 일자리, 인생 2막을 열려나 했었던 기대가 거품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십 년 후에도 일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의 소망과 열망이 사그라들까 봐 우울했다.


하지만 내일은 해가 뜬다고 했다. 아침을 맞이하는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까? 머릿속 화이트보드에 밤새 끄적여봐야 할 것 같았다. 잠을 청해야겠다.


아침이 왔다.

5개월째다. 결심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오늘 해가 뜨는 것을 보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 기다림과 기대감마저도 선택은 나 자신이었구나... 합리적으로 자신을 위로하기 전에

새로운 기회를 잡기로 했다.


서울시 50+

일자리 사업에 눈이 갔고 생각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과학 강사라는 제목의 두꺼운 책을 청춘의 선셋으로 일단락 짓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새로운 일출... 중년의 썬라이즈로 점지한 일은 바로 상담사 일이었다. 감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2020년의 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