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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키우기

by 빛작


엄마의 책임감이 무너졌던 적이 있었어. 호기심에 갑작스럽게 고슴도치 두 마리를 분양받아왔거든. 경험도 없이 말이야.



네가 아홉 살 때였어.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는데, 엄마는 알레르기와 비염에 좋지 않다는 핑계를 들었지.

그러던 어느 날, 친구네 할아버지가 더는 못 키우겠다면서 슴도치를 져가 키워 보겠느냐고 했어.


문득, 강아지 대신 고슴도치는 어떨까 하고 덥석 받아왔어. 단순히 털이 없고, 냄새가 나지 않을 거 같아서 말이야.


고슴도치 두 마리는 모녀 사이였어. 네가 이름을 지어주었지. 엄마는 모짜, 딸은 피짜.


엄마는 안 쓰는 화장실에 리빙 박스로 집을 꾸며주었어. 바닥 폭신하라고 베딩을 깔고, 사료, 물그릇, 먹이통. 목장갑까지 완벽하게 준비했어. 강아지 소품들이었만 말이야.



엄마는 날씨가 좋으면 데리고 나갔어. 목줄 없는 피짜는 공원 광장에서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것 같았어. 모짜는 내려놓자마자 쥐구멍이라도 발견한 듯 줄행랑쳤어. 하마터면 잃어버리는 줄 알았지. 달리기가 쥐만큼 빨랐거든.


하지만 신기하고 즐거운 건 5일이 채 안 되었어.

야행성이라 밤마다 달그락거렸고, 새로운 곳이라 핥고 뜯고, 밀 사료와 모녀의 냄새는 짙고 강렬했지.

7일째 되던 날. 세면대에서 목욕을 시키다가 문득 생각은... 의무적인 사육 하고 있 것 같았어, 미안함이 들었지.



눈 맞춤은 고사하고, 들링 기간이 없었다는 말이지.


고슴도치와 서로 교감고, 학교학원만 보내면서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온기 없는 엄마럼 ...고슴도치를 키우고 있는 것 같았어.

......


엄마 말고는 화장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더라...

아들은... 인사도 구경조차도 두려웠을까.



날이 갈수록 만질 때마다 모짜는 가시를 세웠어. 몸을 둥글게 말면서 말이야. 친해지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어.


그 어려운 목욕을 시키려고 목장갑과 드라이기를 준비하면서 비릿한 냄새가 신경 쓰였어.

주먹보다 조금 큰 모짜를 한 손에 들고 있는 찰나였어. 야구공만큼 단단하게 움츠러드는 거야. 모짜가 있는 힘을 다해 어했던 것이지.

그 바람에 엄마는 모짜를 바닥으로 놓쳐버렸어.


아이쿠야. 순간 모짜는 꿈쩍도 안 했어. 가 나

당황했고, 잠시 나쁜 생각이 들더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어.

......



생명체를 키운다는 건 ‘취미가 될 수 없겠구나’ 하며 느낌이 싸해졌어. 눈 맞춤도 어렵고, 강아지처럼 자기 가축화가 전혀 안 되어있는 애들에게 미안함이 밀려왔어.

씻겨도 개운함은 느껴지지 않았고, 몸을 돌려가며 말려줄 정신도 없었어.

......


달이 되는 날, 모짜와 피자는 할아버지 댁으로 돌아갔어. 엄마한테서 모녀가 해방된 거야.


시멘트 광장을 가로질러 숲길로 돌진하는 모녀를 내버려 두었어야 하나. 야생으로라도 놓아주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



짧은 경험이었지만 강한 기억으로 남았어. 돌봄에 대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지. 사육 안내서도 읽고 사람들과 정보도 많이 나누고, 갖추어야 할 환경이나 물품들도 잘 준비해야 했어.

집도... 대하는 마음도 따뜻해야 하고, 편하게 다가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거였어.


생명체여서, 다른 동식물이든 아이를 돌보는 것과

같은 이치였지. 생물학 책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소 관심을 두고 정보를 얻고 잘 알고 있어야 했어.


모짜 피짜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어. 키운다는 말에는 따라야 할 마음자세가 많다는 것을.

너무 가까우면 서로 찔리 적당한 거리가 필요함을.

오로지 자식에게 과잉의 사랑을 쏟아붓는 도치맘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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