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길이 나를 선택했다. 내 앞뒤의 모든 다른 길은 막혔다.
나는 고정된 습관과, 고정된 공감과 반발에 익숙해졌고, 이제 불쑥 돌아가서 싸움터를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는 들어선 길을 따라 끝까지 가야만 했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상당히 유리했다. 나는 짐을 벗었고 드디어 마음 놓고 내가 바라던 대로 노래하고 웃고, 쉬고, 놀면서 가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누구 앞에서도 더 이상 수치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중략)
이제 내가 두려워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렸을 때 눈을 들어보면 그는 거인처럼 느껴졌다. 자라는 동안에 내 주변의 사람들과 빛과, 나무들 그리고 모든 사물이 줄어들었다. 아버지만이 어릴 적에 본 그대로 항상 거인으로 남았다.
내 앞에 우뚝 솟은 아버지는 내가 받을 몫의 햇빛을 막아섰다. (중략) 비록 내가 갈팡질팡하고, 떠돌아다니고, 힘든 지적인 모험에 몸을 던져도, 아버지의 그림자는 항상 나와 빛 사이를 막아섰다.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일식 밑에서 항해했다.
영혼의 자서전, 카잔차키스
목요일 새벽_ 빛작
텀블러에 시간을 받아두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기지개를 켰고 글을 썼고 시간을 마셨다
시계를 봤고 빈 병을 채웠고 글쓰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또 마셨다
한 모금씩 줄어드는 시간을 볼 때마다
몸 안으로 흘러드는 몇 분을 느낄 때마다
한 줄씩 늘어나는 문장이 생각의 길을 뚫었다
시간 몇 방울은 발맞추어 유유히 흐르더니, 머리를 순환시켰고
집중 한 움큼에 탄산 같은 유혹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었다
질서 있게 줄을 서는 글자들은 길을 넓혔고
들어선 길에서 빛은 두려움을 씻어주었고
영감에 목말랐던 어제의 나를 윤기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마실 시간의 몫을 지니고 길따라 걸어가고 있다
[엄마의 유산] 공저한 책의 '시간'을 주제로 한 글을 덧붙여봅니다.
*시간은 칼과 같아서, 그것을 자르지 않으면 당신을 자른다’라는 말이 있어. 아랍속담이야.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잘 지켜내지 못하면 네가 잘리는 것이고, 시간을 잘 나눠 쓴다면 네가 시간을 자를 수 있다는 말이야. 네가 잘리든 네가 자르든. 여하튼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는 존재가 바로 시간이지 (중략)
시간지기는 말이야. 결단코, ‘중요한 일’을 제쳐두고 다른 일을 하지 않아. ‘맡은 일’이 끝날 때까지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아. ‘해야 할 일’을 실행하는데 흔들리지 않아. 엄마의 정신이 ‘알짜’들을 하찮게 만들도록 놔두지 않아*
<엄마의 충복을 소개할게, 빛작>
본 브런치북 '빛나는 문장들'은 인문학 서에서 발췌한 글귀와 저의 짧은 글을 담고 있습니다.
글벗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엄마의 유산 '네가 바로 블랙스완이야', 2025, 건율원
[빛작 연재]
월 [100일의 보통의 날들]
화 [빛나는 문장들]
수 [자연이 너그러울 때 우리는 풍요롭다]
목 [빛나는 문장들]
금 [100일의 보통의 날들]
토 [아미엘과 함께 쓰는 일기]
일 [100일의 보통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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