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동정하기에 앞서서 나는 내적인 부끄러움을 느꼈다. (중략)
나는 단순하고 순진한 사람처럼 잘못 설득당하면 안 된다. (중략)
처음에는 수치심이, 나중에는 연민이 내 가슴속에서 맥박 쳤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나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분노가, 그다음에는 정의에 대한 갈망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한 책임감이 뒤따랐다. 세상의 모든 굶주림과 불의는 내 탓이고,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내 의무가 달라졌음을 알았다.
세상은 넓어지고, 필연성은 손아귀를 벗어나며, 의무는 하나의 작은 육체, 하나의 작은 영혼 속에 갇혀 질식당한다고 느꼈다.
나는 어찌해야 하나,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마음속 깊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알았지만, 섣불리 그것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 길은 내 본성에 맞지 않는 듯싶었고, 사랑과 노력으로 인간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초월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그토록 많은 창조력을 지녔을까?
만일 그렇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태만해서 그의 한계성을 때려 부수지 못했을 때는
아무런 정당한 구실도 찾지 못하리라.
영혼의 자서전, 카잔차키스
무화과의 창조_ 빛작
암막 같던 껍질에 나비가 놀랐을까
꽃을 찾던 벌이 겁나서 뒷걸음질 쳤을까
잎사귀 사이를 아무리 찾아봐도
수치심과 꽃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향기를 드러내지 않고
내면을 빽빽이 채워온 무화과는
본성을 지키며 인류를 뒤따랐나 보다
밑동에 난 숨통으로 무화과말벌만이
조용한 진화에 앞장서서 필연을 믿고
붉은 속내가 진실된 꽃이었음을 증명해 낸다
꽃이 없다 의아해해도 겉모습을 돌보기보다
속내를 감싼 꽃받침도, 무향도 자신이었음을
아름다운 꽃과 공존할 수 있는 질서를 알고
달지 않은 무화과의 영혼을 사랑하기로 한다
본 브런치북 '빛나는 문장들'은 인문학 서에서 발췌한 글귀와 저의 짧은 글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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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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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 #자서전#무화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