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엘이 말하는 '권태'

by 빛작

2026년 2월 7일


시간이 날갯짓을 멈췄다. 그리고는 바다 위로 다리를 뻗었다. 달빛 아래 수평선이 잠을 청해도 시간은 잔잔하게 흘렀다. 뜨는 해의 뜨거움도 시간이 가는 길을 막지 못했다.


노란 선 뒤로 물러나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광판에서 열차가 도착한다는 글자들이 깜빡거렸다.

속도를 늦추는 열차의 창으로 사람들의 표정이 포착되었다.

출입문은 바람 빠지는 소리로 그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권태의 한숨소리였을까.

두 어깨에 피로감을 맨 채, 마음의 문도 닫히고 있었다. 사람과 시간과 열차가 함께 달리는 것 같았다.

아미엘이 말했다.

권태는 독이나 죄악이야.

자신에게만 빠져 있는 우울이라고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우울이 오는지, 왜 상실감이 오는지.

우울과 상실은 권태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미엘은 벌을 받아야 할 이기주의라고 일기를 썼다.


나는 권태도 고통과 마찬가지가 않을까 생각했다.

슬픔에서, 사랑에서, 비교에서, 경쟁에서, 실패에서, 탄생에서, 죽음에서..

그러고 보니, 샤르트르 말처럼, b와 d사이에 선택 (choice)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선택이 있으면 고통이 있으니까

오르면 내려가야 하니까

채우면 비워내야 하니까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시간은 고통을 떠나보내고

힘겹게 오르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는 한다.

권태가 비워질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하고

권태를 밀어내는데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된다.


권태가 제 모습을 뽐내는 동안

활기는 잠시 힘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권태를 피하려고 고통을 없애려고 또는 피해 가려고 해도 시간만큼 기다려주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아침의 권태, 점심의 상실감, 저녁의 우울이 나에게 스스로 쏘는 화살이라면 화살을 빼내는 건 나의 선택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다. 뽑아서 화살통에 담을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시간이 주는 벌을 설 동안 고민해볼 일이다


오늘도 독자분들과 소통하며, 징검돌을 하나씩 놓습니다. 글벗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미엘일기, 아미엘, 동서문화사, 2019.

#징검돌 #아미엘 #샤르트르 #권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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