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4일
서울숲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으로 따라간 적 있었다. 나만 모르는 명소일지 모른다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믿고 가기 잘했다 싶었던 건 거울연못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생각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거울연못’이 떠오를 때가 있다. 쓴 사람이 어느 생각에 머무르고 있는지 마음의 변화가 있는지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연못은 사실 그대로를 담고 있다. 그 속에서 구름이 흐르고 숲이 보인다. 그래서, 더 들여다보게 된다.
글은 마음의 연못이지 않을까. 화려함을 쫓는지 단순함에 끌리고 있는지 부유함을 쫓는지 진솔함을 찾고 있는지 감정을 찾고 싶은지 깨뜨리고 싶은지가 고스란히 담긴다. 그러고 보니, 더 읽고 싶어지는 글은 본성 앞에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나가는지를 담은 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
이 새벽, 나는 아미엘일기 463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1038페이지가 끝인데, 이제 40프로를 넘겼다. 아미엘이 말하는 본성에 관해서 글을 쓰려고 하니, 잘 써지지 않아 그만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흔들흔들, 아슬아슬. 쓰는 것을 원하고 있지만 또 원하고 있지 않다. 잘 쓰게 되면 좋겠지만 잘 써지지 않는다.
사유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느 본성을 따를지 갈등했다. '동요'가 보여주기 위함인지, '결의'가 보여주기 위함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아미엘에게 말을 붙이기 어려운 이유는 그의 깊은 사유와 자아를 직시할 줄 아는 의지가 넘사벽이라 그런 듯하다. 관찰과 통찰을 지나 성찰하는 단단한 힘이 느껴진다. 생각에 함몰되기보다는 하고 있는 생각을 명확히 아는 작가인 듯하다. 그래서, 사유의 오래된 경향이 짙은 글에 빠져든다.
아미엘은 인생을 이렇게 말한다. 자석의 바늘과 모순, 자연*이라고.
그렇구나. 기울어진 마음이나 삐뚤어진 생각에 흔들거리다가도 '자연과 나'라는 북쪽을 가리키는 구나.
(양극의 원리라면 남쪽은 자연이 아닌 쪽, '나'가 아닌 쪽일까?)
오늘은 아미엘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생각이 정돈되었지만 내가 향하고자 하는 방향을 조금 더 생각해 볼 생각이다. 두 가지의 본성 앞에서 흔들렸지만 글을 내놓아본다.
7월 9일 일기는 아미엘의 마음이 한 곳에 깊이 머물렀던 날인 것 같다. 이날 오전 7시 반, 8시 반, 11시, 오후 5시 네 차례의 일기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내용이 아주 깊었다.
< 오늘도 독자분들과 소통하며, 징검돌을 하나씩 놓습니다. 글벗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868년 7월 9일, 아미엘의 일기 中에서.
#본성 #양극 #아미엘 #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