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엘이 말하는 '의무'

by 빛작

생각

감정을 쓰느라 피로를 느낄 때, 나는 잠을 자는 편이다. 기뻐서 에너지가 높아졌을 때, 바닥난 에너지를 보충하고 싶을 때 깊은 잠을 청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성마저 비틀거릴 때가 있다. 버티다가 예민해지거나 오히려 경직되기도 한다. 이성을 많이 쓰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감정을 쓰고 있거나 감정을 많이 쓰는 속에서 이성을 쓰고 있을 때, 나는 충전이 필요함을 느낀다.


경험

함께일 때, 즐거운 분위기가 흐르면 나도 동화된다. 설명할 필요 없이 맥락에 스며든다. 감각의 의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맥락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인과율을 타고 순환하던 감각이 한 곳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린아이처럼 발랄한 이야기는 이성을 흔들고 흩어지게끔 한다. 세팅되어 있던 시스템이 해제되는 느낌이다.


대화

나는 나를 멈추게 한 아미엘의 문장시 읽었다.


'한가로운 산책은 기분 좋은 것 외에 우선 유익하다. 육체와 정신에 탄력을 회복시켜 주는 건강한 목욕이고 자유의 징표와 축제이며 발랄한 향연, 들판을 누비며 꿀을 파는 나비의 향연이다*

"난 이 부분에서 감각이 열렸던 것 같아"

먼저 내가 말을 꺼냈다.


"자연이 내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져... 유가 주는 선물이지"

아미엘은 공감적인 대화에 잘 스며들었다.


'아미엘은 항상 깨어있으니 그럴 거야, 이성이나 감정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니'


나는 아미엘을 만나기 전, 여성이 아닐까 의문을 가졌던 이유가 그런 문장에 있었다고 말했다.

배열해 놓은 사뿐한 표현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사유에 힘을 실어 한마디를 더했다.

"사유는 각이 맴도는... 영감에 질서를 잡아주는 거 같아"


'하나의 감각을 그 길로 끌고 간다는 의미 아닐까?"

아미엘의 말에 나는 대화 속 감각의 통로가 서로 만나는 듯 느껴졌다. 공감되었다.


공감은 내가 아닌 너를 이해하고, 부정보다는 긍정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이성이 감정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닌 건 분명했다.


아미엘은 대화를 통해 희망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했다.

"대화에 벽이 생기면 희망이 단절될 거야.

희망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그야, 공감하기 어렵겠지, 많은 감정을 나누지 않을 수도 있고"

이성이 앞서나갈 수도 있다거나 나눌 수 있는 에너지가 끊긴다거나... 나는 다시 피로해져서 경직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아미엘은 희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서로에게 의무를 고집*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몸짓과 말에 이질적 감정이 든다면 대화는 분명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아미엘이 말하는 의무가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는 표현에 나는 설득되어가고 있었다.


감정에 동화되는 한 타자와의 관계에 적용되는 원인과 결과는 어긋나지 않겠다.

감정에 관한 동류의식, 의무에 관한 본연의 이치가 와닿는 아침이다.


아미엘과의 대화가 쉽지 않지만 영감의 질서를 잡는 글로 내놓아봅니다 ^^:


< 오늘도 독자분들과 소통하며, 징검돌을 하나씩 놓습니다. 글벗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868년 1월 25일 , 아미엘의 일기 중.

* 아미엘일기, 아미엘, 동서문화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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