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4일
생각
피아노의 '가운데 도'를 쉽게 찾아냈던 어느 날, 나는 헤머가 현을 때리는 피아노의'뒷 풍경'에 놀란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음계의 향연에 매료되어 악기와 친해지면서, 나는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 했다. 같은 모양이면서 높고 낮고, 강하고 약하고 무겁고 가뿐한 건반이 -감각에 귀 기울이도록-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검고 흰건반은 코끼리가 되었다가 물고기가 되었다가 꿈나라였다가 만화세상이었다가
나의 상상과 호기심을 공명시키며 내 안으로 퍼져나갔다.
그래서인지, 작곡가는 소리 풍경을 돌보고 가꾸어 각양각색의 소리를 낳는 천재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인데 뛰어난 재능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여겨졌다.
사유
리듬과 화성을 숙련되게 직관적으로 연주한다는 건 글쓰기와 닮은 듯했다.
자음 열네 개, 모음 열 개를 조몰락거리는 글쓰기의 '가운데 도'는 '폭넓은 지식의 중간값'이라고 개념을 만들어 보았다. 피아노의 맨 처음을 배워야할 때, '도'를 찾아 한 손부터 치는 것처럼
지식의 깊이와 연결이 중간값에 있어야 할 것이다.
상상과 호기심을 리듬감 있게 확산시키고 수렴시키고 말랑하게 옥타브를 오가는 작가의 향연
이 사유라면 어떨까.
글을 표현해 내는 사유의 뒷 풍경은 정확하게 때려줘야 명확한 울림이 나오는 기본기로 다져져야 할 부분으로 느껴졌다.
사유하는 칼럼, 통찰이 담긴 에세이, 깊은 시를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욕심은 그만... 요즘에는 쓰고 싶은 때, 쓰고자 하는 대로 편하게 써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아미엘의 생각
나는 아미엘에게 묻고 싶었다.
현상의 찰나를 포착해 술술 써내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아미엘은 한순간도 그런 적이 없다 고 일기에 적어놓았다.
아미엘은 다른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인데 (어떤 ) 일을 쉽게 하는 사람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뛰어난 재능으로도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천재*라며, 자신도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중략)
생활과 행복에 대해 전혀 신념을 가진 적이 없거나 더 이상 가지지 않게 된 사람, 시간, 애정, 인간 및 사물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 즉 자기 안에서 모든 욕망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는 사람. (중략) 세상은 그런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일기가 아미엘 대신 대답을 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기를 썼다. 시간을 잇는, 애정을 갖는, 기대를 품는 글쓰기에 고민했고 고통스럽지만 고상한 일상에 감사하고 욕망을 즐기고 싶다.
나는 글을 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시간을 쓴다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애정을 쓴다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감각이 말랑하도록 내 안의 공명을 지속해가고자 한다.
느끼는 대로 들리는 대로 연주하던 열살 소녀를 떠올리며...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 나는 쉽게 쓰는 사람이고 싶다.
< 오늘도 독자분들과 소통하며, 징검돌을 하나씩 놓습니다. 글벗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날짜 없음 , 아미엘의 일기 중 '인간에 대하여'
* 아미엘일기, 아미엘, 동서문화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