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쓰기의 말들 / 은유

글을 쓰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는 책

by 나날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부제 때문이었다.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이 책을 읽고 나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모두가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지는 못한다.

...

글을 안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읽기 부담스럽지 않고, 술술 읽힌다. 왼쪽 페이지에 다른 이의 문장을 인용하고 오른쪽에 저자의 이야기가 딱 한 페이지를 넘지 않게 차지하고 있다. 104개의 문장과 글들을 읽고 나면 뭐든 쓰고 싶어 진다. 저자 은유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 잘 쓰려고 하기 전에 “쓰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앞으로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문장들을 모아 보았다.


뭘 써야 할지, 내가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될 때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가 발 디딘 삶에 근거해서 한 줄씩 쓰면 된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 글쓰기는 만인에게 공평하다. / 은유
영 아닌 소재는 없소. 내용만 진실되다면,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없다면. / 우디 앨런


대단한 경험을 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인스타그램에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사진을 올리더라도 나만의 감각기관으로 경험하지 못하면 글로 쓸 수 없다. 특별할 것 없는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가 아니라 평범한 내가 발견한 것을 글로 쓴다면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글은 하루아침에 잘 써지지 않는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기 글을 믿고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남들과 달라지려 하고 스스로를 부단히 연마하는 것이다. / 윌리엄 진서
글쓰기가 단번에 완성되는 생산품이 아니라 점점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글을 잘 쓸 수 없다. / 윌리엄 진서
글쓰기에는 어떤 것도 운 좋게 찾아오지 않는다. 글쓰기는 어떠한 속임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 모든 문장은 기나긴 수련의 결과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별반 다르지 않은 낱말을 주무르고 넣었다 뺐다 문장을 지웠다 살렸다 하는 일과 양파 바구니를 앞줄로 뒷줄로 옮기는 일은 얼마나 다를까. 그 망설임들로 꽉 찬 시간들. ... 무의미의 반복에서 의미를 길어 내기. 무모의 시간을 버티며 일상의 근력 기르기.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 은유
한 문장이라도 갖고 놀다 보면 글쓰기가 즐거워질 수 있다. / 은유
글 쓰는 것이 너무도 힘들 때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쓴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서 글쓰기가 항상 힘들었으며, 종종 거의 불가능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곤 합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에게도 글은 어느 순간 술술 잘 써지는 것이 아니었다.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순간에도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완성을 항해 길고 어두운 순간들을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항해에 비유하는 것일지도.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끝을 맺을 수 있을까. 쓰다 보면 그런 불안함이 엄습해 올 때가 있다. 강제성이 없는 환경에서는 그냥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쓰고 안 부끄러운 것보다 쓰고 부끄러운 편을 택(by 은유)”해서 나아가기로 선택하자.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글을 쓸 때 명심해야 할 것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울림이 단문의 허기를 메워준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문장 사이로 진실의 표정이 날렵하게 드러난다. 견고한 단문의 성채는 행간의 힘이 좌우하는 것이었다. 단문을 쓰세요. 행간을 살리세요. / 은유
화려한 요소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요소가 얼마나 적은가가 글의 성패를 가른다. / 은유
‘설명하지 말고 보여 줘라’는 내러티브의 제 1원칙으로 꼽힌다. ... 여기서 함정은 다 보여 주려다가 글이 안 끝난다는 것, 또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 글에서 보여 주어야 할 것은 ‘주제와 관련된 상황’의 구체성이다. ... 별거 아닌데 싶은 자잘한 요소 하나하나가 인물의 욕망을 밝히고 주제의 전달을 돕는다.
때로 십 년의 세월을 한 줄 문장으로 압축하고 때로 일 분 동안 감정의 요동을 한 페이지에 담을 수도 있다. 굵기가 다른 여러 개의 붓을 쓰는 화가처럼, 과감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기. 다 말하지 말고 잘 말하기가 관건이다. / 은유
표현”력”은 단어와 단어를 연결 짓는 힘이다. 어떻게 소박한 낱말을 잇대어 정확한 감정과 사실을 견인할 것인가. / 은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 / 스티븐 킹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 노무현
묵독이 아닌 낭독은 어조, 억양, 공명, 논점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내가 나를 벗 삼는 것, 글이 느는 지름길이다. / 은유
글쓰기란 생각의 과정을 담는 일이다. 생각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중지하는 것이다. 글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필요하다. / 은유
애매한 단락은 버려야 글이 선명해진다. 단락별로 소제목을 달아본다. 소제목까지 이어서 읽어 봤을 때 글 전체 내용이 요약되면 성공한 글이다. / 은유

단문을 쓰되 행간을 살리고, 불필요한 말을 걷어 내고, 접속사와 부사로 글을 뒤덮는 대신 주제와 관련된 상황을 설명하지 말고 잘 보여주고, 쉬운 단어와 단어를 잘 연결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힘을 싣고, 쓰고 나서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글을 다듬는다.
글 쓸 때 명심해야 할 수많은 것들. 이것들만 잘 지켜도 좋은 글이 된다.


문학이란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 볼 때

‘문학은 용기다’라는 명제를 처음 봤을 때 곧장 와 닿지 않았다. 문학은 언어 예술이고 용기는 굳센 기운인데 무슨 상관이 있지 했다. 꾸준히 글을 읽고 쓰면서 그 깊은 의미를 알아챘다. 좋은 글에는 금기와 위반이 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드러내고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을 밝혀낸다. 작가의 용기에 탄복하고 작가의 용기에 전염된다.
어쩌면 용기란 몰락할 수 있는 용기다. 어설픈 첫 줄을 쓰는 용기,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 다시 시작하는 용기. ... 도돌이표처럼 용기 구간을 왕복하는 일이 글쓰기 같다. 오죽하면 이성복 시인이 말했을까.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시키는 거예요.” / 은유
문학은 슬픔의 축적이지, 즐거움의 축적은 아니거든요. ...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 최승자
기록한다는 것은 조수간만처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죠. / 김영하
‘울먹체’로 쓰인 글은 대체로 완성도가 높다. 거짓 없고 성숙하다. ‘그 사건’을 복기하고 뒤집어 보고 바로 보고 따져 보고 헤아리느라 오래 뒤척인 몸이 빚어낸 글의 위력일 것이다. 좋은 글은 자기 몸을 뚫고 나오고 남의 몸에 스민다. / 은유

“스밀랑 smillrang” 내가 새롭게 필명으로 삼은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지은 필명이지만, 위 문장의 의도와 다르지 않다. 스미다. 무언가에 서서히 영향을 주어 스민다는 말의 어감이 좋았다. 완전히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스밀랑(말랑)”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독하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글로 써서 하루하루 무심코 지나가면 잊히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 무의미의 시간들에 의미와 관계의 옷을 입혀주리라. 거기엔 어떤 “슬픔”이, “용기”를 내야만 비로소 말할 수 있는 “부조리함”이 담길 것이다. 두려워 외면하려 했던 것들을 마주하고 들여다보자. 어떤 형태가 될지 아직 명확히 잡히는 것은 없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세계를 읽어 낼 수 있다(by 마루야마 겐지)”고 하지 않았는가.


왜 글을 쓰는지, 계속 쓰기 위해 만지작 가려야 하는 생각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일은 지겹고 괴로운 반복 노동인데 그 고통을 감내할 만한 동력이 자기에게 있는가. 재능이 있나 없다 묻기보다 나는 왜 쓰(고자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여긴다. / 은유
불안정한 나, 예측 불가능한 나. 그런 내게 일어난 일을 글로 쓰려면 누구나 고민에 빠진다. 여러 갈래의 마음이 다투고 이때의 나와 저때의 나는 다르거늘 글로 쓰면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되니 쓰기에 애매하고 쓰고도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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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글로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변덕스러움, 나약함, 얄팍함, 불확실성을 어디서 확인할까. 이토록 오락가락하면서 과연 어디로 가는지 궤적을 어떻게 그려 볼까.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 같다. / 은유
쓰기 전엔 잘 쓸 수도 없지만 자기가 얼마나 못 쓰는 줄도 모른다는 것. 써야 알고 알아야 나아지고 나아지면 좋아지고 좋아지면 안심된다. 안 쓰면 불안하고 쓰면 안심하는 사람, 그렇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 은유
한 사람이 그냥 일을 한다는 것과 창작자로 산다는 것은 다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멋있어 보여서, 악기 메고 다니는 게 폼나서, 그림을 그리면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서 시작할 수는 있어도 계속할 수는 없다. 작가로서의 자의식은 어설픈 제스처 차원이 아니다. 외면의 연기를 넘어선 내면의 요청이다.
왜 글을 쓰는가? 내가 본 진실을 말하고 싶다. ...... 소박하든 거창하든 허황되든 겸손하든, 내면의 동기는 한 사람과 그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창작은 혼자 하는 일, 자문자답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수업 마지막 시간에 학인들에게 말한다.
“작가로서 자의식을 가지세요. 나는 왜 무엇을 쓰고 싶은가,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은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물음을 어루만지는 동안 아마 계속 쓰게 될 거예요.”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 리베카 솔닛
글쓰기는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는 작업이다. 나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타인이라는 지옥’을 배제해 버리는 비밀 글은 ‘글쓰기의 지복’으로 가는 길도 차단한다. / 은유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런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계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닐까? / 리베카 솔닛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낸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이 아니듯, 글을 쓴다고 해서 “작가”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부르고 인정해줘야만 작가도 아니다. 글을 쓰고 고민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해 낸다면 스스로 “작가”라는 자의식을 가져도 좋다!
혼자 일기장에 끄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더라도 완결된 글을 내놓아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글을 읽는 모두에게 말을 하는 것. 그 말이 나에게서 나왔지만 타인의 고독한 체험을 통해 새롭게 전달되는 행위를 한다면 작가로서 자의식을 갖기에 충분하다.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왜 쓰는가 하는 물음을 계속 어루만지며 써 나가자.


마지막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며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직장인”이라고 스스로를 의식하고 있다. 글 쓰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것의 가장 큰 목적은 물론 먹고사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내 일을, 내가 일하는 분야를 좋아한다. 창작의 영역으로 자꾸 끌어들여 배우려고 한다.
작가 은유가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일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을 병행하는 것은 체력과 시간을 고려할 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리적인 피곤함이 글을 쓰려는 나를 자꾸만 방해한다. 정신적으로도 글을 쓴다는 노동을 하기에 일상의 여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나아가자. 생각에 틈을 내어주자. 내가 갖고 있는 물음을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를 하자. 스스로에게 용기를 갖고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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