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일부분 죽어도 살아갈 수 있나요 2편

나쓰메 소세키 "마음"의 다른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by 나날

이 글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의 이야기를 제멋대로 상상하여 써본 이야기입니다.

소설 <마음>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 이야기를 다룬 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https://brunch.co.kr/@smillrang/21


학생에게

남편이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한 후 경황이 없는 내 앞에 더 경황없는 모습으로 학생이 나타났습니다. 저 역시 소식을 받고 어머니 집에서 정신없이 달려온 길이었는데, 어째선지 당신도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은 듯 얼빠진 얼굴로 찾아왔었죠. 어찌어찌 남편의 장례를 마치고 보름 후 학생은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러고는 남편의 마지막 편지를 내밀었죠. 편지를 다 읽고 나는 물었습니다. "이 편지를 내게 보여준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그때 학생은 "잘 모르겠지만, 나(학생 본인)를 위해서 인 것 같다."라고 대답했죠.

어쩌면 그 대답이 당신에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에는 내가 아는 남편의 모습도 있었고 알지 못했던 남편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나에게 항상 보여주던 얼굴과 보여줄 수 없었던 얼굴.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그 틈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을 내쉬며 살 수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아니 어쩌면 한쪽의 저를 마음에서 죽이고 살아왔기 때문에 남편이 그렇게 생을 마감하도록 놔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의 저를 괴롭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이 마지막까지 지켜주고 싶어 했던 저 역시 어두운 뒷면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다만 지구의 자전 주기에 맞춰 공전하는 달처럼, 남편을 중심으로 생활을 맞춰왔던 저의 뒷면을 지구에 있는 남편은 볼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달의 뒷면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저는 끊임없이 남편을 중심으로 맴돌아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을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뒷면을 내 안에서 철저하게 죽여왔기 때문에 저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때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기에는 너무도 예민하고 여린 사람이었습니다.


이쯤에서 남편의 친구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겠군요. 남편이 처음 우리 집에 그분을 데려왔을 때, 저는 속으로 썩 내키지 않았어요. 어딘가 속을 알 수 없고 자기만의 세계에 쉽게 빠지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남편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당시 어머니나 저나 그분을 집에 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숙을 하고 있었으나 딱히 생활비가 쪼들리거나 하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내고 종종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도 생기자 그분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둘이 있어도 농담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남편과 달리, 그분은 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학교 생활 이야기며, 자신의 진지한 성격 때문에 본의 아니게 놀림감이 된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이야기해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남편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어요. 둘이 그런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다가도 남편만 나타나면 예의 그 무신경한 듯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가 저는 조용한 웃음을 내뱉을 뿐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분이 남편에게 생활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량처럼 유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칫 남편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하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단순히 그런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무엇인지 남편의 편지를 보아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제 와서 아무리 미루어 짐작해봐도 거기에서 그칠 따름이겠지요.


어쨌든 남편이 어머니를 통해 저에 대한 마음을 밝히기 전까지 저는 그 두 분과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더 웃게 만드는 사람은 친구분이었지만 남편과 함께 있을 때 저는 까닭 모를 안온함을 느꼈습니다. 마치 큰 산과 같은 면이 있어서 좀처럼 제 안의 변화를 꺼내 보여주지 않지만 크고 작은 변화 속에서도 큰 틀을 유지하는 안정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막상 어머니를 통해 청혼을 받자 남편을 예전같이 마주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에 대한 호감을 눈치채고 있었으나 아직 학생 신분인 만큼 급히 결혼을 청해 올 만한 어떤 기미도 없었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저는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들뜨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혼자 장을 보러 가시고 저는 집에 오도카니 앉아 앞으로의 일을 가늠해 보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수업이 일찍 끝났는지 그분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제 앞에 앉았습니다. 저희는 마당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평소처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보고 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분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되며 남편과 결혼을 할 것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생긋 웃으며 어머니가 아셨으니 모든 게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것 같다고만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계속 시선을 고정시킨 채 어머니가 아닌 저의 마음을 물어보셨습니다. 그제야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저는 웃음기를 살짝 낮추고 "좋은 사람이다. 함께 있으면 나 역시 안정된 기분이 든다."는 말을 최대한 담백하게 건넸습니다.


그제야 그분은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는 어떠한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스캔들인가 싶었고,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당신 역시 좋은 사람이나, 남편을 먼저 알게 되었고, 남편에 대한 호감이 더 크다."라는 말을 두서없이 늘어놓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저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지막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으실 거다." 지금 생각해도 비겁한 말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그분의 고개는 푹 꺾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을 둘러싼 제가 알지 못하는 여러 상황들이 그를 붙잡아 내리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날이었습니다. 그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건. 그 날 저는 남편보다 먼저 그 방에 들어갔었습니다. 왠지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두 통의 편지를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두 가지 다른 이야기를 담은 유서였습니다. 한 통은 일반적인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었고, 다른 한 통은 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자신의 변화, 남편과의 관계를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저에 대한 마음이 쓰인 글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손이 덜덜 떨리는 상황에서도 저는 다른 한 통을 집어 들고 방에 돌아왔습니다. 도저히 다시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글이었습니다. 딱히 저나 남편에 대한 원망이 적혀 있진 않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그동안 그분의 행동들을 다시 곱씹어 보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그 글을 보일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 날 남편이 우리를 보살피는 동시에 모든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저는 남몰래 그 편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 한구석도 함께 불태웠던 것인가 봅니다. 살면서 그 뒤에 있는 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대부분의 시간 잊고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때때로 남편의 어둠을 의식했지만 그때도 저는 저의 다른 한쪽을 내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꼭꼭 숨기고 한쪽 마음을 도려내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왔으나 남편마저 이렇게 내 곁을 떠나자 내 마음의 다른 한쪽 역시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내 마음을 거칠게 내 보였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내 마음 한쪽을 죽이며 살아왔으나 결국 둘 다 떠나보내고 말았습니다. 반쪽으로 살아왔으나 다른 반쪽마저 잃어버린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싶었습니다.


그때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남긴 글을 읽고, "자기 자신을 위해" 그 글을 내게 건넨다는 당신의 말을 듣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사과 한 알처럼 한쪽을 자르면 다른 한쪽이 남는 것이 아니라, 마치 포도알 일부가 상하고 떨어져 나가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는 포도송이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남아있는 포도알을 그러모아 남겨진 채로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학생에게 이 글을 보냅니다. 이 편지를 읽고 나를 찾아와도 좋고 다시는 나를 보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는 어딘가에서 남은 마음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학생에게 이 글을 보내는 이유는. 누가 아나요.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듣고 계속 살아갈 마음이 들지도 모르니까요. 마음이 일부분 죽어도 남은 마음을 그러모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내가 상상해 본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다.


<마음>을 읽고 이 이야기를 그려 보며 다른 소설이 떠올랐다. 요즘은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더 많이 번역되고 있는 <상실의 시대>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 이유와 <상실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넘겨야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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