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과 설렘의 기억
펜팔이란 말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펜팔 친구를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겐 믿기지 않는 일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문자나 카톡 대신 진짜 쪽지나 편지를 보냈다. 당시 월간 만화 잡지 구석에 펜팔 친구를 구하는 난이 있었다. 펜팔 친구는 갖고 싶었고, 실제로 용기 내어 몇 번 보내 본 것 같기도 하지만 답장을 받은 기억은 없다.
편지나 쪽지에서 좀 더 친밀한 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교환일기도 있었다. 공책에 편지처럼 1:1로 한 권의 공책을 주고받으며 일기 쓰듯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교환일기를 쓴다는 건 서로 잘 알고 있고, 더 잘 알고 싶은 단짝 친구라는 말이었다. 공책을 선정하고 일기를 쓸 볼펜의 색을 정하고 그림을 그리고 친구가 한 말에 그럴듯한 대답을 해주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 모두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방학 때는 학교에서 만날 수 없으니 가까이 사는 친구가 아닌 이상 교환일기를 쓸 수 없었다. 나의 단짝은 학교를 기준으로 나와 반대쪽에 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버스 정류장 3개 정도 되는 거리인데, 그때는 매우 멀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방학이 되면 만날 일이 없었다. 아마도 친구가 먼저 제안한 것 같은데, 우리끼리 주고받는 편지가 아니라 진짜 우체국을 통해 오고 가는 편지를 쓰게 된 건 어느 해의 겨울방학 때였다.
편지를 쓰고 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다. 2,3일 후면 편지가 친구에게 도착한다. 친구가 바로 답장을 보내면 2,3일 후에 내가 다시 답장을 받는다. 편지의 내용보다도 이런 방법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그때의 나에게는 매우 근사한 일이었다. 내가 쓴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의 손을 거쳐 친구에게만 전달된다는 것. 공식적이면서도 내밀한 비밀의 즐거움. 문방구에 가서 우표를 10개씩 사곤 했다. 눈길을 걸어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것, 그 과정이 좋았다. 내 편지가 우체통 바닥에 닿아 툭 하는 소리를 낼 때, 내가 친구에게 쓴 이야기가 형태와 무게를 지닌 어떤 것이라는 실감을 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6학년 겨울 방학 때 이사를 했고 친구와의 거리는 정류장 3개에서 동 3개를 거쳐 지나가야 하는 곳으로 더 멀어졌다. 편지를 받자마자 답장을 썼다. 당시 우표값이 비싼 건 아니었지만 친구는 깜찍한 아이디어를 냈다. 우표를 풀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투명 테이프 여러 개로 우표를 모두 덮도록 붙인다. 그러면 소인이 투명 테이프 위에 찍힌다.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은 테이프 위에 찍힌 도장을 지우고 그 우표를 그대로 붙여서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우표를 살 필요 없이 1개의 우표로 계속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
그 얘기가 적힌 편지를 받았을 때, 그 친구는 정말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가족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때 아빠가 했던 말을 듣고 그게 옳지 않은 일이란 걸 알았다. 아빠는 혼을 내지도, 화를 내시지도 않았다. 단지 매우 슬픈 표정으로 “그건 누군가를 속이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말해 주지 않으셨다. 내 편지를 손으로 배달해 주는 우체부라고 상상하고는 매우 부끄러워졌다. 아빠는 젊은 시절 취미로 우표를 모으셨다.
사용하지 않은 새 우표를 겉봉에 붙이고 친구가 테이프를 붙여온 우표는 봉투 안에 넣어서 다시 그 친구에게 보냈다, 아무말 없이. 그 친구가 그 우표를 재사용할지는 그 친구 몫으로 남겨 두었다. 그 친구도 다시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보내지 못한 편지가 있다. 1년을 미뤄둔 마음의 짐. 내가 쓴 글이 실린 독립잡지에 편지를 넣어 택배로 보내려 했으나 우표를 붙여 우편으로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1년 만에 도착할 글들. 1년의 시간을 사각 우표에 담아 파주로 보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