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떡볶이집
시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대학생 때 찾아다니던 작은 맛집이 프랜차이즈가 되어, 바로 거기에 가지 않더라도 먹을 수 있게 된 경우를 종종 본다. 집 앞 쇼핑몰에 예전에 줄 서서 먹었던 삼청동 떡볶이집과 같은 이름의 가게가 들어왔다.
깔끔해진 지금과 또 달랐던 그때의 삼청동. 골목 양쪽으로는 낮은 기와지붕으로 된 가게가 늘어서 있었다. 골목 끝에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종각 종로타워 빌딩이 보였다. 떡볶이집 왼쪽에는 음식점이 오른쪽에는 이발소가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을 메워 겨우 들어선 가건물 같은 곳이었다. 옆 이발소의 1/3 정도 크기의 전면에는 제대로 된 간판도 없었다. 유리문 앞에 크게 붙어있는 네 글자 이름과 골목을 따라 길게 줄 서있는 손님들의 행렬로, 거기가 우리가 찾던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 외관과 긴 줄로 살짝 갸우뚱하며 줄을 섰다. 멈칫멈칫하는 우리를 보고 가게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오시더니, “오늘은 여기가 마지막이다. 재료가 없어서 이 이상은 장사 못하니, 뒤로 줄 서는 사람이 있으면 돌아가라고 말해 달라.”라고 몇 마디 던지시고는 그대로 가게로 들어가셨다. 그 말투에서 진한 피로와 약간의 짜증이 풍겨왔다. ‘맛집은 재료가 다 떨어지면 장사를 종료하는구나.’ 처음 알았다. 오후 6시가 안 됐을 무렵이었다. ‘떡볶이가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싶은 마음을 누르며 줄의 마지막을 찍었다.
가게 안 역시 가게의 외관만큼이나 좁은지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다. 우리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려했고 그때마다 “저희가 마지막이래요.”라고 해야 했다. 그곳에 데려간 당시의 남자 친구는 그 말이 지치지도 않는지, 뒤로 오는 사람들에게 안타깝다는 투로 그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기다린 게 족히 1시간은 넘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가게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골목이 어두워지고 난 뒤였으니.
가게 안은 예상보다 더 좁았다. 아주머니는 따로 주문을 받지도 않으시고 2인분의 떡볶이를 내놓으셨다. 그러더니 빈자리에 털썩 앉으셨다. 알 수 없는 자부심과 그 보다 더 진한 피로가 느껴졌다. 전쟁 같은 하루 장사를 마친 상인의 안식이 테이블 너머로 날아왔다. 시장이 반찬인지 그 날 먹었던 떡볶이는 진하고 맛있었다. 그 시간을 밖에서 서서 기다렸으니 맛이 없다면 이상했을 터. 실은 그 이후로도 그런 떡볶이는 맛보지 못했다.
맛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좁고 낡은 가게 내부와 장사를 마치고 한 숨 돌리시면서 우리는 쳐다보던 아주머니였다. 원래부터 불친절하셨는지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부터 불친절하게 되신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심하게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일단 떡볶이도 볶음밥도 맛있었으니까. 장사가 잘되는 것에 대한 흥도 아니고 맛에 대한 자부심도 아닌, 하루 일과를 마친 이의 지친 그 모습이, 얼른 가게를 닫고 쉬고 싶은 이의 피로가 깊게 남아있다.
그 뒤로 한 번 더 그 떡볶이집을 찾았다. 이미 그때 그 자리는 없어지고 다른 골목에 더 큰 가게로 확장 이전된 상태였다. 테이블은 더 많아지고 그릇도 더 깨끗해지고 서빙하는 분도 늘어나고 줄을 기다리는 시간은 줄었지만 맛은 그만 못했다. 신촌을 지나가다 같은 이름의 가게를 보았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커지고 많아지고 늘어나면 예전 같지 않다. 누군가 나눠 가진 피로만큼 맛도 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