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는 법
어릴 적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달은 4월이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학교 생활에 딱히 어려움이 없었던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유독 학년이 올라가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남몰래 어려워했다. 친구들 중에도 유독 속마음을 털어놓는 단짝이 항상 있었는데, 그 친구와 반이라도 달라지면 갑자기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없어져 외로움을 느꼈다. 이것저것 적응하느라 3월이 가고 4월이 되어도 나에게 아직 그 빈자리가 크게 있었다. 그러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즐겁게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의 외로움은 더욱 커졌다. 사람이 적응을 하고 마음을 붙이는데는 각자만의 고유한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다. 힘겨운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면 또 마음을 나눌 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외로움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될수록 조금 다르게 발현되었다. 중고등학생이 되어 나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 일기를 쓰고 내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주변 친구들에게는 적당한 선을 그었다. 내 세계가 깊어진 만큼 쉽게 그만큼을 내보일 친구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러기 위해서 나에겐 남들보다 긴 시간이 필요한데, 그 만큼 누군가와 허물없이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런 성향을 눈치채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그 벽을 깨려고 나름 노력했다. 하지만 그건 쉽게 깨질 수 없는 벽이 아니었다. 나를 드러내고 다가가려 할수록 자꾸만 숨기는 것들이 늘어났고, 이런 내가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드리고 부딪치고 한걸음 도망가고, 그러다 다시 다가가고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사람을 만날수록 외로워졌고, 그 외로움을 떨쳐내려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 노력했다. 밖으로 나가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하려 하면 할수록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글을 쓰고 나를 들여다보려는 자아는 점차 옅어졌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인정하게 되었다. 모든 걸 다 터놓는 인간관계는 애초에 힘들다는 것을. 내 안의 일부만 열고 타인을 대한다고 해서 그 일부가 거짓은 아니라는 것을. 모든 걸 다 터놓지 않고는 진실할 수 없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솔직하게 표현하게 되었고 각자 다른 층위로 뚫고 들어와 스미는 사람들이 생겼다.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을지라도 마음 편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기였다.
최근엔 나의 밖이 아니라 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어 사람들을 만나고 어딘가에 속해있는 것에 안정감을 느꼈다면, 최근엔 혼자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아직도 어딘가 속해있지 않다면 자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격랑에 휩쓸릴게 뻔하지만 적어도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예전에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면 지금은 외로움을 지그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느꼈고, 그게 묘한 마음의 고요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게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라는 것을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읽다가 자각하게 되었다.
고독과 외로움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한 선배 시인이 박준 시인에게 해 준 말이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외로움과 고독을 잘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 고독했을 때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향했고, 그러다 지지면 다시 혼자로 돌아와 외향적이지 못한 성격 탓을 하곤 했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멀어졌다고 느꼈을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있음을 탓하며 시선을 그 사람에게만 향하기도 했다.
고독과 외로움. 이제라도 고독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다음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