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들리는 순간, 내가 시를 사랑하는 방식
시가 쓸모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믿기 때문에 쓸모 있기도 하고, 쓸모를 느꼈기 때문에 쓸모 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시의 쓸모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내밀한 무언가에 있다.
살면서 다양한 순간을 마주한다. 대부분은 순간은 귀밑을 스쳐가지만 어떤 순간은 또렷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같이 있어도 나만이 포착하는 어느 순간이 있다. 안타깝게도 그 순간은 언어화되지 않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의 느낌만은 명징하다. 당장 누군가와 나눌 수 없어도 훗날 또렷이 떠올릴 수 있는 냄새 같이.
신기하고 놀랍게도 그런 나만의 순간을 누군가 언어로 표현해 놓은 것을 만난다. 도저히 말로 형태를 부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나만의 내밀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언어로 풀어놓았다. 그걸 마주하는 순간 보이고 들리기 시작한다. 더 귀 기울여 듣고, 자꾸만 보고, 때때로 멈칫멈칫하며 나아가게 된다. 나에겐 백석의 시가 그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란 소설이 그랬다.
시를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하기도 하고, 한 편의 시를 외우라고 하기도 하고, 필사를 하라고 하기도 한다. 각자가 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나의 경우엔 시의 단 한 구절을 나만의 방식으로 발견하면 그 시와 교감하게 된다. 단 한 구절. 나를 뚝 떨어뜨리는 단 한 구절. 거기에서 시작한다. 그 구절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생각하고 다른 구절로 시 전체로 나아간다. 나에겐 그게 충분하다.
시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한 권의 시집을 손에 들면 대부분의 시들은 잘 모르겠고 쉽게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 시를 자아내기까지 시인은 내가 모르는 삶을 살았고 나는 나대로의 삶을 살았다. 전혀 다른 사람이 이 넓은 우주의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기적 같은 일이다. 그 기적 같은 한 구절을 만나면 그 시집을 손에 든다. 당장 보지 않더라도 마음이 부를 때 찾을 수 있게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둔다. 때론 같은 시집에서도 미처 보지 못했던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그것부터 귀를 기울인다.
시의 쓸모란, 망망대해와 같은 세상에서 누군가, 어디에선가, 어느 시간에선가 같은 별을 보고 있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있다.
한 구절에서 시작해 어느 한 해의 시작이 된 시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막차의 시간 /김소연
버스가 출발의 형식으로서
우리를 지나쳐버렸다
멀어졌지만
저것은 출발을 한 것이다
멀어지는 방식은 모두 비슷하다
뒷모양을 오래 쳐다보게 한다
버스는 한 번 설 때마다 모두의 어깨를 흔든다
집에 갈 수만 있다면 이 흔들림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아침이면 방에서 나를 꺼냈다가
밤이면 다시 그 방으로 넣어주는 커다란 손길
은혜로운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고구마를 키운 이후로
시간도 얼마나 무럭무럭 자라는지를 알게 되듯
슬픔 뒤에 더 기다란 슬픔이 오는 게 느껴지듯
무언가가 무성하게 자라지만
예감은 불가능해진다
휙휙 지나쳐 가는 것들이
내 입김에 흐려질 때
차가운 유리창을 다시 손바닥으로 쓰윽 닦을 때
불행히도 한 치 앞이 다시 보인다
몸이 따뜻해지는 일을 차분하게 해본다
단추를 채우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