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은 제자리걸음

사건과 사고 사이에서 길을 잃다.

by 나날

항상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알지 못했다. 내가 살아온 삶이 얄팍해서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것도 이야기가 되지 못했다. 이야기가 될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시작해 이야기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읽고 나면 나도 이런 적 있는데, 이런 사람들 있지, 라는 작은 공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짧은 이야기를 한 편 완성했다. 첫 습작이었다. 부끄러운 습작일지라도 직접 쓰면서 경험한 것은 전혀 달랐다. 이야기를 처음 쓸 때는 생각조차 못했던 다른 이야기와 얽히며 내 안에 있던 다른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경험을 했다. 물론 다른 글을 쓸 때도 이런 경험은 여러 번 있었다. 쓰다 보면 기존에 갖고 있던 다른 생각, 혹은 경험들이 굴비처럼 엮어져 나오면서 내용이 더 풍성해지는 경험. 이야기를 쓰면서 이 경험이 좀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제까지 와 조금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원래 쓰고자 했던 것에 살이 덧붙여진 느낌이었다. 첫 습작을 하면서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라 일단 쓰면서 보니 두 사건 간의 내적인 공통점을 발견했다. 팔다리가 생긴 느낌이었다.

첫 습작은 이런 강렬하지만 어느덧 희미해진 경험만을 남겼다. 첫 이야기를 더 다듬지도 그렇다고 다음 습작으로 이어가지도 못한 채 몇 개월이 지나갔다. 다음 이야기에 대한 메모는 끄적거려보았지만 좀처럼 시작이 되지 않고 있었다. 첫 이야기에 뭔가 남아있는데, 그걸 다시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자꾸 외면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다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나오는 글을 읽고 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가고 있었는지 막연하게나마 손에 닿는 느낌이었다.



삶이 진실에 베일 때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예컨대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이 사고이고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이 사전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고는 '처리'하는 것이고 사건은 '해석'하는 것이다. (...) 요컨대 사고에서는 사실의 확인이, 사건에서는 진실의 추출이 관건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사고가 일어나면 최선을 다해 되돌려야 하거니와 이를 '복구'라고 한다. 그러나 사건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사건이라면, 진실의 압력 때문에 그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 이것은 소설의 이론이기도 하다. (...) 좋은 소설에서 인물들은 대개 비슷한 일을 겼는다. 문득 사건이 발생한다, 평번한 사람이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고뇌한다, 마침내 치명적인 진실을 손에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자신이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이런 식이다.

(...)

어딘가에 단편소설은 삶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파열의 선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었다. 삶의 어딘가에 금이 가고 있는데 인물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나서야 그들은 파열을 깨닫는다. 단편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 그것은 삶이 진실에 베일 때 짓는 표정이다. 나도 당신도 그런 시간 속에 정지 화면처럼 서 있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 신형철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나의 첫 번째 습작에서 평범한 주인공이 작지만 파열을 일으키는 사건을 겪고 그 사건이 사고로 이어지며 끝을 맺는다. 그 글을 고치지도 다음 습작으로 넘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내가 걸리는 부분은 사건과 사고 사이의 간극이다. 사고로 마무리하지 못하면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글을 읽고 무리한 결말을 낸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결말을 바꿔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세련된 마무리는 아니지만 다른 결말을 내려면 아예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엄습한다. 그 과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변명을 해 본다. 거기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다. 다른 세계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래서 몇 가지 구상을 끄적여 보았지만, 쓰기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 역시 핑계고 변명이란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위 글을 읽고 떠오른 소설이 있다. 최근 읽은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이란 단편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원치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어떤 사건에 영향을 주고 그 사건의 뒤늦은 여파로 다시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마지막을 읽고 나 역시 진실에 베인 듯 멍한 표정이 되었을 것이다. 내 습작에서 이렇게 세련되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이전 삶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체성을 주기보다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보편적인 공감을 주고 싶었으나 의도대로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오히려 납작한 인물이 사건을 겼었으나 어이없는 사고로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다고 해서 바로 해결할 수 없는 상태. 습작은 제자리걸음 상태다.

매거진의 이전글시인의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