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괜찮아지기 위해서 하는 것
나는 꽤 오랫동안 꾸준히 요가를 해왔다. "꽤"라고 붙였지만 그조차도 주관적일 수 있으니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면 일주일에 2,3번씩 5년 이상 해왔다. 그렇다고 물구나무를 서거나 엄청 유연한 것은 아니다. 꾸준히 오래 하는 것과 일정 수준 이상 잘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나는 요가를 내 몸에 맞게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했을 뿐이다.
내가 의지력이 매우 강하거나 요가에 대한 신념이나 열망이 컸던 것도 아니다. 사실 거기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일을 습관으로 만들려면 기존에 형성된 습관이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에 덧붙이면 된다는 얘기를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스쿼트를 하고 싶다면 화장실 갈 때마다 열 번씩 하는 것이다. 물론 마음먹는다고 해서 다 지켜지고 습관이 되는 건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회사 내에서 하는 그룹 엑서사이즈를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요가 수업에 참여했다. 출근은 하는 것이므로 출근을 하면 당연히 요가를 하는 것이 되었다. 물론 요가가 내게 잘 맞았으니 꾸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요가는 꽤 긴 시간 나와 함께 해온 하나의 루틴이었다. 그런데 그게 깨지게 되었다. 바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퀘스트를 수행하면 서다. 임신 중에도 초기에는 계속 요가를 평소대로 했었고 점차 몸이 무거워지면서는 임산부 요가 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참여했다. 하지만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 기간과 육아를 경험하며 그 루틴이 깨지게 되었다. 수업을 듣지 않으니 혼자 요가를 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나의 요가에 대한 습관은 출근이라는 요인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었던 셈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출산 직후에는 아이와 나를 분리할 수 없었다. 24시간 대기 상태로 아이를 쉽게 떼어놓지 못했다. 몸과 마음 모두. 30분 조차도 따로 떼어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독박 육아라는 말은 정말 슬픈 말이다. 우리가 한때 그러했듯 아이들은 어른들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특히나 영유아는 말 그대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그걸 혼자 감당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가혹한 일이다. 나는 독박 육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아이와 쉽게 분리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요가는커녕 기본적인 생명 유지 활동도 겨우 했고 그마저도 항상 마음이 불안했다. 내가 그런 상태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삶의 하나의 루틴이 깨진 것이다. 그건 생각보다 큰 파장을 가져왔다. 아침 요가라는 루틴이 나에겐 내 삶에서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영역이었는데 그게 무너지니 많은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간과 체력과 마음의 여유라는 세 가지 자원의 균형이 깨지자 걷잡을 수 없이 여기저기에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중 하나인 시간이라는 자원에 틈이 생겼다. 요가 수업에 가지 못하는 대신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부터 시작해 2,30분 정도의 요가 시퀀스를 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됐다. 앞으로 얼마나 지속할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괜찮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괜찮아지기 위해서 이 루틴을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모든 게 너무 힘들어, 무기력해, 마음의 여유가 없어, 괜찮아지면 다시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 보니 괜찮아서 하는 게 아니라 괜찮아지기 위해 루틴이 필요한 거였다. 물론 이 마저도 앞서 말한 시간과 체력, 마음의 여유 중 하나라도 틈이 생겨야 가능하다.
아주 작은 틈. 그 틈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