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남겠는가
돌아오는 길은 항상 아쉬움과 안도감이 교차한다.
무사히 여행을 끝냈다는 안도감과 일상에서 나를 구원했던 여행이 그만 끝나버렸다는 아쉬움.
두 감정 중에 어떤 것이 더 큰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똑같을 것이다.
후쿠오카에 적을 두고 구마모토와 나가사키를 둘러본 이번 여행은
두 도시 모두 전차가 다녀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여유로웠다.
레트로의 감성이 충만했다.
여유로웠다.
여행에서 여유를 빼면 뭐가 남겠는가, 지당한 말이다.
특히 나가사키는 개항지로서 개항 당시의 건물들이 남아 있고
산비탈에 빼곡한 주택은 밤이 되면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한다.
개항지로 선택되어 외국인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그 당시에는
산비탈은 그저 산비탈이었을 것이다.
서양인이 들어오고 공장이 세워지고 무역이 증가하면서
나가사키는 활기를 띠게 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점점 위로, 위로 거주지가 확대되어 갔을 것이다.
글로바 가든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서양식 주택을 짓고 서구의 문물을 일본에 이식하면서
바다를 바라보며 느꼈을 서양인의 정서를, 나는 헤아리지 못한다.
유달리 모험심과 개척정신이 뛰어난 사람들이라 했을지라도
이국에서 문득문득 느끼게 되는 낯섦과 외로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항구는 아름다움과 동시에 애수에 젖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 좋았다.
유복했을 글로버 상인의 저택은 입이 떡 벌어지게 큰 규모였고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 할 크기?)
나가사키의 야경도 나폴리 못지않게 아름답다.
하지만 못지않게 좋았던 것이
시간이 여유로워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에 케이크 한 조각 먹는,
바로 그 순간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마치 여행의 행복감과 일상의 안정감이 등가인 것처럼
이제 여행의 스펙터클한 사이트를 보는 것과 커피 한잔의 여유를 부리는 것이
나에게는 등가로 다가온다.
빽빽한 스케줄에 여기 찍고 저기 찍고 하던 여행은 이제 저 멀리로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여기 찍고 저기 찍지만, 거기 가서 커피를 한잔 꼭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여행에서 여유를 빼면 뭐가 남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