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셔의 둥그런 등을 보고 싶다

와터 부근의 더 큰 나무들-데이비드 호크니, 2007년

by 루시

그 나무를 봤을 때, 나는 한순간에 매료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넋 놓고 쳐다본다는 말이 맞았을 거다. 물론 난 현장에 가서 본 것도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소개된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그냥 그렇게 그대로 freezing.

거대한 스케일도 마음에 들고 그 커다란 그림 앞에 섰을 때 받을 감동도 미리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전시회를 가지는 않았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기에 안 가고 말았다. 좋은 건 알지만 사람이 많으면 제대로, 잘 감상이 안 되잖아요?

그러다가 우연히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에 펼쳐진 거친 자연. 그 앞에 웬 노인네가 이젤 위에 캔버스를 놓고 자그마한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등은 이미 굽었고 날씨는 을씨년스러웠다. 동그란 안경을 쓴 귀염성 있는 얼굴의 노인네가 바로 호크니였다. 그는 어시스턴트도 없이 부지런히 붓을 놀렸다. 어떻게 보면 농업적 근면성을 필요로 하는 ‘야외’ 작업을 열성적으로 하고 있다는 그. 지베르니 근처에서 모네가 그랬을까 싶은 풍경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모네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다수의 많은 화가들이 야외에 이젤을 놓는 것이 상당히 ‘쿨’ 한 일이었을 것이고 지금은 오히려 그 정도의 대가가 야외에 '철퍼덕'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레어’ 한 일이라는 점은 아닐까 싶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화면을 보면서 문득 나도 저 동네에 가서 우연히 호크니가 그림 그리는 옆을 지나쳐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네는 관광객이 많이 가는 동네도 아니었고 인적도 드물었다. 마치 은둔자처럼 호크니가 조용히 마을을 배회하며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스케치가 시작될 듯한 분위기였다. 촬영이 진행된 때는 생명력이 분출하는 시기가 아니라 지금처럼 찬바람이 불어오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자연도 포근한 품을 보여주지 않았다. 앙상했고 말라 있었고 뭔가를 거부하는 듯한 느낌. 하지만 그 앞에서 노구를 이끌고 고집스럽게 붓질을 계속하던 호크니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만약 내가 런던에서 테이트 모던을 갔었다면 그를 훨씬 이전에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 박물관 순례에 지친 나는 루브르와 마찬가지로 테이트 모던도 아주 시원~하게 패스했다. 그 당시에는 일말의 아쉬움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다.) 런던에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진짜 딱 하나밖에 없다.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줬던, 부산이 고향이라던 유학생. 아버지 사업 때문에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고 푸념하면서 그 당시에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던 ‘칸쿤’이 정말 좋았다고 진지하게 말하던 남자. 그때 몸만 피곤하지 않았더라면 런던을 안내해준다던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건데 말이죠. 인생은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핀트를 못 맞추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다큐멘터리 이후로 나는 그의 그림도 좋아하게 되었지만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 큰 호기심이 생겼다. 동그랗던 그의 얼굴과 안경이 시그니처처럼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야외 스케치를 할 때에 그의 옷차림도 상당히 ‘센스’ 있는 것이었다. 누가 화가 아니랄까 봐 범인의 센스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입성을 하고 그는 스케치에 몰두하고 있었다.

1937년생. 생존하는 화가 중에서도 상당히 고령층에 속한다. 그의 그림이 가지고 싶어 가격을 알아보니 그야말로 우주적 가격이라 그냥 소장욕은 마음에 고이 접어 두었다. 영국 요크셔의 브래드퍼트에서 태어난 그는 전통적인 회화를 공부하다가 미국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구름 끼지 않은 하늘 아래 온갖 반짝이는 것들을 세련되고 모던하게 화폭에 담는다. 수영장, 풀사이드, 수영하는 사람, 샤워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컬렉터 등등 일상을 군더더기 없이 화려한 색감으로 담아낸다. 일상을 이렇게 심플하면서 세련된 필치로 ‘팝’하게 그려낸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영국은 전체적으로 ‘찌푸려’ 있다. 나처럼 찌푸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낭만적이고 운치 있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것도 너무 오래 지속되면 더 이상의 감흥이 안 생길 수도 있다. 항상 회색빛으로 낮게 깔린 하늘을 보다가 ‘쨍’한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받았을 때의 호크니의 기분은 어땠을까? 정신까지 살균되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까. 그는 그런 캘리포니아의 밝고 거침없는 발랄한 매력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전통이 켜켜이 쌓여있는 영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미국은 호크니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시기의 그림들을 보면 그 밝음에, 정제된 표현에, 세련됨에 나도 모르게 숨이 '훅' 들이마셔진다.

하지만 귀소본능이 발동한 걸까? 2000년대 들어오면서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영국인 호크니가 사랑하던 미국 땅을 떠나 다시 낮게 가라앉은 영국의 하늘 아래로 찾아든다. 브리들링턴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요크셔의 풍경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david hockney-sydney morning herald.jpg [from tate modern]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와터 부근의 더 큰 나무들이 탄생한다. 빽빽한 나무들로 가득 찬 숲. 나뭇잎이 달리지는 않았지만 풀밭이 연둣빛을 발하는 것이 봄으로 가는 문턱인 것 같다. 나무들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한 뼘 더 그 크기를 키웠을 것이다. 더 큰 나무로 자랐을 것이다. 영국 땅의 역사만큼이나 긴 역사를 자랑할 것만 같은 큰 나무는 그 자리에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고 가족을 이루고 또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무수히 봐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 역시 나무에게는 자양분이 되었겠지. 하늘을 향해서 움을 틔우고 물을 끌어올려 생명을 유지하는 그 일은, 우리가 하루하루 밥벌이를 신성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이들에게도 신성한 활동일 것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틈에서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받아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수분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잎이 달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처절하게 힘들지만 아름다운 활동이기도 하구나, 사람도 나무도 산다는 것은.

그 치열함을, 처절함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세밀하게 나무를, 숲을 그려낸 화가의 붓질이 경탄스럽다. 특히 움을 틔우는 상단 부분에 있어서는 그 복잡도가 증가하는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는 호크니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 상당히 기분이 좋다. 저 멀리 자연이 내뿜는 핑크빛의 환희는 봄이 깊어지면 더 짙은 기쁨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것이다.

말없이 묵묵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던 그. 베레모 아래에 고집스럽게 나무를 응시하며 붓질을 하던 그. 그 둥그런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내가 갈 때까지 요크셔 어딘가에서 묵묵히 붓질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